난 3년에 한번씩 검사를 받는다.
검사 후엔 항상 '그대로군요. 지금처럼 계속 하시죠.'란 얘길 듣지만
검사를 할 때마다 두렵다.
며칠 전 3년에 한번 돌아오는 그 날이 또 다가왔다.
병원에서는 검사실을 못 찾아올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어떻게 찾아오는지 소상히 알려준다.
나에게는 벌써 몇 번이나 갔었는지 익숙한 그길이다.
많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 곳을 가게 되고, 못 찾을 걸 대비해 알려주시는데 난 이미 익숙하니 마음이 안 좋다.
그 어린 시기에 검사실을 드나들었던 나와 엄마가 안됐고, 그 시기를 드나든지가 그만큼이나 오래됐고, 자주였다는 것이 안됐다.
이번에 병원가면서 곰곰이 따져보니 그때의 엄마가 지금 내 나이보다 불과 몇 살 많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까꿍이가 9년 후면 그때 내 나이고, 우리 엄마는 나보다 빨리 나를 낳았으니...
본인이 배아파 낳은 딸이 아픈 것을 한없이 바라봤어야 하는 엄마 마음 어땠을까.
나에게 우리 엄마는 항상 우리 엄마였으니까.
어린 그 시기에도 우리 엄마는 큰 산과 같았으니까 난 엄마만 바라보며 그 시간을 견뎠다.
그런데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을 거다. 누구를 탓하리.
누워있는 딸을 바라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던 아빠는 병원 조차 따라오지 못했다. 그저 먼 대구에서 가끔씩 전화를 하실 뿐.
(아마도 그 때 아빠가 우리와 함께 병원에 있었다면 아마 우리 모두 무너져내렸을거다...ㅋ)
엄마 혼자 그 긴 시간을 보냈을 걸 생각하니 그 시간을 견뎌낸 엄마가 참 대단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병원을 소개시켜주셨던 할아버지는 긴 투병시간을 거쳐 하늘의 별이 되셨다.
큰 병원을 가라고 하셨던 외할머니도 하늘의 별이 되셨다.
나는 나이의 앞자리가 2번이나 바뀌었다.
우리 엄마아빠도 벌써 나이의 앞자리가 2번이나 바뀌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제는 허허 웃는다.
외출하듯, 나들이 하듯 병원 다녀올께요! 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나혼자 다녀올 깜냥이 되었다.
참 다행이다.
가끔씩 엄마가 자랑하듯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우리 가족보고 부족한게 뭐냐고 너무 부럽다고 말해. 다 너희들 덕분이다. 고맙다."
이제는 엄마한테 얘기한다.
"엄마는 남들이 편안할 시기에 저 땜에 병원을 그만큼이나 가고 눈물의 세월을 벌써 오랫동안 보내셨잖아요. 이제는 편해도 되지."
인생의 굴곡이 딱 한번이고, 그 시기는 제각각이라면 아마도 우리 엄마아빠에게 그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을 것이다.
이미 나 때문에라도 말이다.
까꿍이와 나꿍이가 건강하고
나때문에 그만큼 속앓이하셨던 우리 엄마아빠가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바라고 바랐던 병원나들이였다.
사랑해요 엄마아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