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키우던 아줌마의 복싱 도전기
우리 체육관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화, 수, 목 3일간 레벨테스트를 진행한다
희한하게도 평소의 수업 시간, 트레이너와의 미트 대련 시간은 너무 힘들어서 시간이 안 간다고 느껴지는데 한 달마다 있는 레벨테스트는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평소 수업 때와는 다르게 레벨테스트가 있는 날의 수업은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돈다
힘들면 대충 할 때가 많았던 펀치와 허리를 돌리며 체중을 싣는 자세들도 이 날 만큼은 정확하게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두 배로 힘이 드는것 같다
트레이너는 평소에 레벨테스트 있는 날처럼만 운동을 해도 운동효과나 실력은 쑥쑥 늘겠다며 다들 집중하는 모습에 농담을 날리곤 한다
우리 체육관의 복싱 레벨은 처음 시작하는 흰색부터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마지막으로 검은색까지의 띠가 존재한다
개인 글러브의 손목 부분에 해당되는 색깔의 테이프를 둘러서 코치들이 한눈에 레벨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야지 어느 시간에 운동을 나가서 어떤 트레이너와 운동을 하더라도 본인 레벨에 맞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레벨에서 배우는 주요 기술을 알아보자면,
레벨 1(노란색)은 기본 스탭과 기본자세, 쨉, 원투 등을 익힌다
레벨 2(초록색)은 원투를 응용한 기술들인 원투 원투, 원투쓰리 원투 등의 기술을 익힌다
레벨 3(파란색)은 훅과 어퍼를 이용한 기술을 배우고,
레벨 4(빨간색)은 더킹, 위빙 등의 방어와 피하는 기술을 배우게 된다
레벨 5(검은색)은 스웨이, 패링 등의 좀 더 고급의 방어 기술을 배운다
평소 수업 시간에 자기 레벨에 해당되는 기술과 그 주의 콤보를 샌드백과 트레이너와의 미트 치기를 통해 수없이 연습하고 반복한다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고도 바로 한 번에 레벨이 올라가기는 어렵다
한 레벨에서 배우는 기술을 완벽히 마스터할 때가지 다음 레벨로 올라가기는 힘들어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트레이너가 말하는 기술을 순간적인 딜레이 없이 빨리 칠 수 있는지, 각 기술에 맞는 자세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레벨에 해당되는 콤보를 문제없이 한 번에 쳐 낼수 있는지 그리고 레벨이 올라갈수록 미트 대련 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집중력을 유지하며 미트를 잘 칠 수 있는 체력과 집중력 등 종합적인 것을 보고 레벨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제법 오랜 시간 빨간 띠를 유지하고 있던 지난달.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긴장되는 레벨 테스트를 마치고 드디어 검은띠로 올라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게 뭐 공식적인 승급 심사나 단증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마스터 레벨이라는 검은띠에 올라가는 순간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 체육관에서도 몇 없는 검은띠를 내가 하게 되다니.
수업을 마치고 글러브에 있던 빨간 띠를 떼어내고 검은띠를 붙였다
전과는 다른 묵직함과 함께 부담감도 생겨났다
이후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시작할 때에 검은띠가 붙여진 내 글러브를 끼면 사람들의 시선이 더 느껴졌다
빨간 띠를 함께 달고 오래 운동을 같이 해온 분들도 축하한다, 대단하다 등의 인사를 전해주기도 하고 초보 레벨인 사람들의 신기함, 동경스러운 눈빛도 받았다
그만큼 부담도 더 느껴지는 자리라는 게 느껴졌다
내가 하는 모든 동작과 기술이 대충해서는 안될 것 같고 내가 단 검은띠의 무게가 느껴져 대충 하는 모습도 보이기가 힘들었다
이게 바로 왕관의 무게라는 걸까.
별것 아닌 걸로 과한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꾸준히 빠지지 않고 단련하고 운동해서 이뤄낸 결과에 스스로 더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그리고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나도 하면 할 수 있다는 그 결과 하나가 내가 앞으로 해나갈 모든 일에 멋진 동기부여가 돼줄 것 같아 기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