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싱을 시작하게 되기까지
애키우던 아줌마의 복싱 도전기
최근 노력해도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자존감은 한 가지로 구성되는 게 아니라 자기 효능감(성취감-해야 하는 것), 자기 안정감(편안함을 느끼는 것), 자기 조절감(하고 싶은 것) 세 가지가 균형을 맞춰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자기효능감에 대한 것만 중요시되어 균형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기 효능감은 뭔가를 이루어내는 성취에 관련된 것이다 보니 성취를 이루기 위해 하고 싶은것을 포기하고 해야만 하는 것에 중점을 맞추어 하게되고, 결국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번아웃이나 허탈감, 공황 등에 빠지게 된다
내가 복싱을 시작하기 전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름 일하는 것을 너무 보람 있게 생각했고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주변에서 인정받는 것을 유독 중요시 생각했던 만큼 일이 나에게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인 만큼 즐겁게 하기보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나는 일하는 행위 자체에 뿌듯함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임신을 하고 몸에 무리가 와서 일을 줄여야 한다고 권유받았을 때에도 최대한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이를 낳기 바로 전까지도 무리해서 일을 했었고,
그러다 자리를 오래 비우기 어려운 업무 특성상 일과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다
주변에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많은 고민 끝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가정주부가 된 상황.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나는 유독 직장 생활과 내가 내 몫을 해내는 것, 내 능력을 인정을 받는 것으로 완전하지 않은 자존감을 버텨왔던 사람이었는데 내 대부분을 차지하던 직장 생활이 사라져버리고 나니 일종의 패닉이 왔던 것 같다
당연히 아이가 예쁘지 않고 소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였다
한순간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가장 심했던 건 내 선택에 대한 후회가 깊어졌던 부분이다
내가 한 선택에 대해 끝없이 후회가 드는 순간 자존감이 가장 바닥을 쳤던 것 같다
이럴 때 주변 환경도 영향을 많이 미치는데 그 부분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나와 성격이 너무 비슷한 남편은 예민해 하는 나를 보며 본인이 더 스트레스를 받았고 내가 내린 결정이면서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 위로해 주지 못했다
오히려 본인의 힘듦이 크다고 생각해 서로 서운함만 쌓여가기 시작했다
성격이 비슷해서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오히려 한 명이 힘들어하면 감정의 전염이 커서 같이 힘들어 하고 예민해지기를 반복하며 분위기는 갈수록 냉랭해지기만 했다
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남편과의 관계도 점점 나빠지는 것 같을 때.
복싱을 만났다
힘들어서 지푸라기든 누구의 손이든 붙잡고 싶을 때, 잡고 일어설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난다는 건 참 행운인 것 같다
우연히, 그것도 다른 복싱장을 생각하고 그 문 앞까지 갔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 나왔는데
그 돌아가는 길에 눈에 띄어서 홀린 듯이 들어가게 되었던 지금의 체육관에서 나는 많은 걸 찾았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게 오랜만에 참 설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땀을 흘리고 집중하는 행동이 불필요한 생각을 정리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오래 쉬던 운동을 배우니 몸 이곳저곳이 당기고 아프고 피곤해서 쓰러지듯 잠들 때도 많았지만
오히려 더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속상한 일을 겪어도 금방 털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지금은 신랑까지도 함께 우리 체육관에 다닌다
휴무가 매번 바뀌는 업무다 보니 평일에 휴무인 날은 같은 시간에 복싱 수업도 함께 하고
마무리 운동까지 서로 도와주며 운동을 한다
이러니 복싱을 시작한 것이 내 전환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더 잘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