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처음으로 눈이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저녁을 지을 때쯤 제법 흩날리는 눈발에 '드디어'라는 탄성을 질렀다. 첫사랑, 첫 출근처럼 어설프게 끝날 줄 알았던 첫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어른 크기만큼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고도 바닥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흠뻑 내려주었다.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들뜬 아이 둘을 데리고 학교 앞 공원으로 향했다. 샛노랗고, 미끈하게 빠진 눈썰매에 두 아이를 싣고 산타의 썰매를 끄는 루돌프처럼 달렸다.
관공서와 학교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원엔 우리처럼 첫눈을 즐기러 나온 낭만가객들이 가득 차 있었다. 둥글둥글 눈덩이들이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얗고 포근한 인상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하얀 공터는 생일이 같은 눈사람 형제들의 주거지가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닥을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옆집. 앞집, 우리 집 남자아이들도 살아있는 눈사람이 되어가는 첫눈 오는 밤. 하얀 눈 속에서 더욱 선명한 빛깔로 반짝이는 생명력들이 붉게 타오르는 눈 오는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