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가을의 거리는 이야기들이 넘쳐흐르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낙엽이 흘러가는 그 거리에서, 홀로 빈가지를 세고 있는 수많은 나목들에게서 그들의 이야기가 주체할 수 없이 회자되고 있다. 독백처럼, 들을 사람 없는 혼잣말처럼, 그러나 깊이 울리는 파동의 소리로 가슴을 울리는 그런 당신들의 이야기가 흩어지고 있다.
책이라면 행간의 여백이 많아지는 그런 페이지가 아닐까.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그냥 느껴지는 침묵이 소란스러운 가을 거리. 우리가 숫자를 세고, 마음을 다잡고, 멀리 떠나왔던 그날들의 끝이 와간다고 말해주는 낙엽 지는 사람의 마을 속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기억이 책이 되어 스며든다. 읽히지 못해도, 어느 낡은 서점에 먼지가 쌓인 채 아무도 찾지 않을지라도 우리 이야기는 어느 해 가을의 한 페이지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