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 끝에 핀 꽃들은 눈으로 먹고 마음으로 가득 향을 채운다. 그래서 봄에는 달큰한 향이 숨 쉴 때마다 피어난다. 볕 좋은 곳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춘곤증으로 졸린 눈을 억지로 깨우며 사람들이 산책을 나왔다가 환하게 밝은 꽃들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을 보니 이제 진짜 봄이라는 것을 체감을 하게 된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자유수영을 한 후 잠시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작고 고운 할머니가 말씀을 건네신다. "입고 있는 티가 참 예쁘네요. 그 옷을 입은 사람은 더 예쁘고."연세가 제법 있어 보이는 노부인은 말씀도 듣기 좋게 예쁘게 하셨다.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튼 할머니는 아주 짧은 시간에 큰 아드님, 큰 며느님, 작은 아드님, 작은 며느님은 물론 살아오신 이야기들과 아쉬웠던 순간까지 재밌게 풀어내셨다. 딸이 없어 섭섭하다는 소리를 몇 번 하시더니 내가 아들만 둘 인 것까지 서운해하셨다. 정이 많으셔서 그런다고 생각하며 웃었더니 나이 들어 어디 가서 말할 일이 없는데 이렇게 잘 들어주니 기분이 좋다며 다시 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푸념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여든이 넘으신 분이 대학도 나오시고 사업도 하셔서 경제적으로 윤택하시지만 역시 말년엔 자기 곁을 살뜰히 챙겨주는 딸이 없다는 것이 서운하시다는 것이다. 그게 인륜으로 좌지우지된다고 하면 저도 하나 낳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 할머니는 아직 젊으니 시도해 보라시지만 나이 오십에 딸을 낳자고 임신을 하고 싶진 않아서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중이라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봄꽃이 피고 마음도 몽글몽글 달달해져서인지 낯선 사람과 허물없는 짧은 대화도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콤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