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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Nov 27. 2024

'말'에도 세월이 있다.

나의 인격은 말로 표현된다.

 요즘에 나는 문득문득 과거에 했던 말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떠오르는 말들은 전부 경솔했고, 거짓되었고, 과장되었으며, 지난 어린 나의 모습을 부끄럽게 한다. 그럴 때마다 생겨나는 후회들은 걷잡을 수 없이 크게 다가와서,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별로였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안다. 세월이 가지는 변화에서는 나도 변화하게 한다는 사실을.


'말'에도 세월이 있다.


 '말'이라는 것은 참으로 쉽다. 뱉어내기 쉽다. 속마음을 이야기를 하거나, 있는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기에 가장 간편하고 간단하다. 하지만, 뱉어낸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별로였던 말을 번복하고 수정하기 위한 과정에서도 말이 함께 쓰이는데, 그 말은 수정될수록 덕지덕지 살이 붙어서 과하고 못났게 되어버린다. 그런 말은 곧 나의 생각과 행동을 표현하는 방법이라, 나의 인격을 형성하기도 하고, 나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살을 붙이고,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나의 모습이 참 별로다.라고 생각할 때는, 이게 현재의 나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에도 세월이 있다. 어릴 때는 옳고 그름만을 생각하면서, 내가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른 채 내뱉었다. 난 거짓말을 못하는 솔직한 사람이니까- 라며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선이라는 기준을 최선 하지 않은 채, 무례함을 범하기도 하였다. 쓸데없는 참견은 상대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했고, 매몰찬 말은 객관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타당성을 부여하면서 말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그 '말'의 힘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가다 보니 말을 잃어 갔다. 어려우니까.


솔직함과 무례의 차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거짓되지 않은 솔직한 사람. 진솔한 사람이 좋다고 말하였다. 나도 그렇게 커왔다. 그랬기에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 에둘러 말하거나,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안다. 솔직한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경우와 부정적인 경우를 별도로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솔직하다'의 사전적 의미. 거짓이나 숨김없이 바르고 곧다. 우리는 착각하는 것이다. 거짓이 잘못되었기에, 바르고 곧은 것은 항상 옳기에- 솔직하다는 단어를 긍정의 의미로 쓰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솔직한 사람이니 거짓말을 못한다. 또는 솔직하게 말할게-라는 말을 붙이면서 그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부터,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나 상황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면서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늘 복잡하다. 그 속에서 솔직하다는 단어를 들이밀면서 무례를 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무례함'은 결국 말을 한 사람의 인격이 되고, 그 사람 자체가 되면서, 이런 이는 당연히 멀리하게 된다. 무례한 사람들은 자신의 무례함을 인지하지 못한다. 인지하였을 때, 후회를 한다면 사과를 하거나, 앞으로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그렇게 뱉은 말을 덮기도 하고, 아니면 후회 없이 나는 이런 사람이니,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과 맞지 않는 거겠지- 하고 말을 덮는 대신, 그 사람과의 관계를 덮는다. 그렇게 '말'로 나의 세월을 입히고 입혀서,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준다.


후회되는 말, 고치고 싶은 말


 나의 지난 말은 참 줍고 싶은 말들이 많다. 후회되고, 고치고 싶은 말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알았다. 뱉은 말들. 그리고 뱉고 싶어 했던 개인적인 일기, 지금까지 썼던 작품들. 다시 세상 속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하지만- 부끄러움을 아는 현재에 있기까지, 그 말들이 모이고 모여 나의 부끄러움을 만들었고, 말의 무게를 알고, 말의 세월을 알게 해 주었다. 

 말의 힘은 참 크다. 말을 하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치유되기도 한다. 또 후회하게 하기도 하고, 나를 당당하게 하기도 하고, 다음을 기약하게도 한다. 그렇게 나를 완성시켜 주는 귀한 말이다. 지난날의 글과 말을 주워 담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말은 날아가버렸지라도, 글은 남아있는데, 이 글들을 삭제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다. 하지만 그 글들도 결국 지난날의 나였다. 그런 감정, 그런 생각들이 모여지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한편으로는 나의 성장기를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찬찬히 살펴본다. 지금의 나는 변화하고 있으니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슬프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화는 한다. 세월이 있고, 겪어온 경험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방어도 하고 공격도 하고, 회피도 하면서 나는 세월에 맞춰 변해간다. 크게 변하지 못할지로도 변화는 하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에 대하여 고찰하는 사람일수록 그 변화는 크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너무 당연스럽게, 너무나도 쉽게 말해버린다. 지난 나의 날이 무의미하게 말이다. 매우 허무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고통과 행복을 섞어서 나아가고 있는 나에게 자꾸 과거와 함께 묶어버리는 말이다. 내가 말의 무게를 알고, 예의를 알고, 후회를 알아가고, 나를 알아간다. 일생을 그렇게 살아간다. 그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실례이다. 그저 나 외의 사람을 이해하고, 일부를 아는 정도가 다일 것이다. 속단은 금물일 것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상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 상처의 무게는 곧 말의 무게일 것이다.

'말'의 무게


 사람들은 늘 말한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만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어렵기에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한다. 말을 그냥 뱉기도 한다. 본연의 '나'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보니, 조심한다고 해도 조심하지 못하는, 경솔한 상황은 항상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입을 다물게 된다. 오히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신중하고, 진중한 느낌으로 주변 사람들이 좋게 봐주기도 한다. 그래서 말은 조심하기보다 아끼는 편이 더 쉬워진다. 

 나를 표현하는 일. 말.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말이 많았다. 언어가 곧 나를 표현하고 꾸며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뽐낼 수 있는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면서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었고, 당차고 솔직한 말을 하면서 나는 진실된 사람이자, 자기 주관이 또렷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앞설수록 나의 말은 많아지고, 많아진 말은 한없이 가볍게 보여졌다. 그중에는 과장된 말에서 '거짓말'도 은근하게 섞여있었다. 그렇게 나는 타인에게는 그런 사람으로 꾸며질지는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말 뒤에 실제 나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나의 인격은 말로 표현된다. 

 나는 말로 표현된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에서 사람으로서의 품격이 보인다. 이 품격은 나의 바탕이자 타고난 성품이라 하지만, 결국 이 품격도 내가 만들고 내가 가꾸는 것이다. 타고난 것은 없다. 완전하고 온전한 것은 없다.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나의 일상을 가꾸어줄 말. 이런 말은 오늘도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나를 보여주고 있다. 세월이 지난날에 공감을 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는 말.  나의 인격은 오늘도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또한 흘러 고일 세월임을 앎에도 말을 하면서 나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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