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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Dec 20. 2024

낙서

함부로 쓰인 글자와 그림의 흔적을 덮다.

나의 자리.

우리의 자리가 있다.

짧고 짧은 생에 마련된 우리의 자리.


잠시 머물다 떠나갈 자리라는 것을 알기에,

쉽게 가벼히 머물다가

흔적 없이 뜨는 것을 바라지만,


마음 깊숙한 곳.


진한 발자취를 남겨놓고 가볼까 하는

어린 마음에 옅은 낙서를 휘갈겨본다.


어린 낙서는 이 세상의 티끌이라

남이 알아주지도 않은 스친 흔적이니


그 하나 남겨보려

발버둥 친 내가 우습다.


내가 다녀간 자리. 깨끗하게 닦아 비켜주리

내가 다녀간 자리, 작은 꽃잎이나 남겨둘까

이런저런 고민 속에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나의 스쳤던 자리가 선명해진다.


나의 자리에 작은 온기 하나.

나의 자리였던 곳에 은은한 연꽃향 조금


이제 너의 자리가 될 정중한 이 자리를 넘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앉아, 머물렀던 시간 동안 보이지 않은 세심한 흔적들이 중요했다.

티 안나는 그 옅은 흔적은, 네가 머물러 있는 동안을 함께 할 것이고,

네가 떠날 때의 남겨놓은 흔적을 너 다음의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닳고 닳아 사라지는 낙서가 아닌,

 은은하게 남아 있을 세심한 흔적을 감싸 안아 본다.



어린 : '어리석은'의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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