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마음일지라도 놓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등에 기다란 실이 있었다.
사실 있는지도 몰랐다.
가늘고 긴 실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작디 작은 아기를
안고 씻기고 젖을 먹여야 한다.
그래야 한다.
땀과 눈물에 축축하게 젖은 꼿꼿한 등은
조금씩 느슨해졌다.
젖내와 땀내가 깊숙하게 베일 무렵
느슨해진 등은 터지고 말았다.
우수수 쏟아진 솜들은
뭉개뭉개 부풀어
내 등 상처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있는 나는
그저 웃고만 있다.
쏟아진 솜들이 내것이 아닌 것 마냥.
등에는 큰 상처가 있다.
나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까먹었다.
커다랗게 빈 속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소중하디 소중한 아기를
재우고, 놀아주며
텅 비어진 속은 조끔씩 먼지가 차올랐다.
비어진 솜으로
꺼져버린 얼굴과 주름진 손이
선명해질쯤
나는 바닥에 내버려졌다.
나는 솜들이 다시 차오르겠거니 하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나는 괜찮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그저그냥 평범한 엄마인형이다.
낡지도 않은
새것도 아닌
그저그냥 평범한 봉제인형.
등저리에 톡 실밥하나가 헐렁이고 있다.
꼿꼿하게만 펴있던 인형은 등을 구부려
작디작은 새 인형을 안는다.
툭.
우수수 터져버린 실들이 흩어지며 솜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솜으로 속이 꽉찬, 부드럽고 포근한 봉제인형을 안고 있자면 여러모로 위로가 된다.
말하지 않아도, 소리내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포근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런 봉제인형을 소중하게 껴안고, 여러날을 지내다보면, 처음, 꽉찬 속의 봉제인형은 어디가고, 생각보다 더 말랑해진, 닳고 있는 봉제인형을 발견한다.
손때가 묻어서 더욱더 애착이 간다. 그러다 인형을 붙잡고 있는 실의 느슨함을 보면서 언젠가는 터질 것 같지만, 애써 외면하고 가지고 논다. 그렇게 애정을 주고 받았다. 봉제인형은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터져버린 봉제인형. 생각보다 쉽게 솜이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아주 서서히 나오다가 어느순간 뭉텅뭉텅 나오게 된다. 그때쯤이면 손쓸 도리가 없다. 수습을 할려면 할 수 있지만, 쉽지는 않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내는 하루 속에서 무언가를 해야하고, 해내야하는 과정에서 나의 진심은 어디까지인가, 진실은 상관없었다. 그저 묵묵하게 해내고, 그저 잘 - 현재를 잘 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서서히, 조용히, 빛을 잃어간다. 알지만 애써 외면하는데, 그게 결국은 마음에 병으로 터지고 만다. 그 터진 마음을 주워담아보려해도 쉽지 않다. 그리고 그걸 그냥 흘려보내자니 망가져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발견은 어디까지나 발견이고, 이미 공허함에 사로잡힌 나는 무기력하게 여전히 시간만 보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인형은, 나는 놓치지 않기위해 발버둥친다. 괜찮다하며 다독인다. 쏟아져버린 솜들이 나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내가 해야한다고 붙잡고 있는 것, 사랑하는 것, 나의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 집착이라할 수 있지만, 집념이고 나의 의미가 되어주는 것. 살면서 그런 것 하나쯤은 있으니까- 없다고 말한다면 아직 찾지 못한 것일거라 믿는다.
자극적인 것만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고, 남들처럼 마냥 틀에 박힌 생활이 목표가 아닌 것처럼, 삶의 원동력이 대단한 것이 아닐수 있다. 격렬한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솜들이 완전히 쏟아지지 않는 이상. 나는 아직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 수습은 어렵더라도 다시 담을 수 있으니까.
오늘도, 힘든 마음을 붙잡고 있을지라도, 그 힘듦을 잃게 하는 단 한가지라도 있다면. 봉제인형은 계속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 또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로 되어줄 수도 있다. 그렇게 주고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