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제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9

| 서귀포시 공공도서관 이은숙

제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9 |

제주도에는 도서관이 많아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점은 책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축복입니다.


서귀포에는 공공도서관 8곳이 있는데, 

어느 날부터 도서관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조용하고, 딱딱한 줄만 알았던 도서관에서 음악이 흐르기도 하고,

책모양 초콜릿을 선물로 주시고, 도서관 뉴스레터가 발행되고,

사서들의 큐레이션 추천 도서들을 전시하면서 도서관이 풍성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도서관들이 모여서 서귀포 베라벨 책정원 축제가 열렸습니다.

저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축제 중 하나 입니다. 


서귀포 공공도서관의 즐거운 변화를 시작한 사서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1. 제주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서귀포시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2.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일을 하기 위한 루틴과 습관이 궁금합니다.)


저는 보통 7시~7시 반 사이면 기상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이도 등교 시키고 있어요.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아이를 내려주고 곧장 회사로 향합니다. 출근 거리가 짧아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보통 컴퓨터를 켜서 업무를 시작합니다. 


특별한 루틴이나 습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일과 시간엔 그때 그때의 일을 제 방식대로 처리하는 편이라서요. 그리고 웬만하면 퇴근은 6시 정시에 하려고 합니다. 사실 워킹맘들은 퇴근 후 후반전이 가장 바쁜 시간일 겁니다. 저녁 준비도 하고 아이 숙제나 공부도 봐줘야 하니까요. 다행히 청소와 빨래는 남편이 잘 해주고 있어서 그 부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매일의 저녁 메뉴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모님 집에서 살 때는 때 되면 알아서 차려 나오는 저녁이 참 큰 선물이었구나 싶어요. 우스갯소리로 “무슨 음식 제일 좋아하세요?” 물어보면 아줌마가 된 지금은 “남의 차려준 밥은 다 맛있습니다.” 하고 대답할 정도에요.




3. 일주일, 한 달, 한 해의 업무 과정이 궁금해요. 계절 별로 달라지는 일들이 있을까요?


지금 하는 업무는 제가 속한 부서의 전반적인 사업, 시책 등을 기획, 점검하고 이를 보고합니다. 부서 성과관리도 하고요, 그리고 서귀포시 관내 등록된 작은 도서관의 점검 및 운영 지원 등의 업무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보통 1월~2월엔 올해 주요업무계획을 작성합니다. 전년도에 이미 차년도 계획은 다 나와있지만 사업 예산까지 반영되서 실제 확정하는 단계라고 할까요. 속해있는 8개 도서관의 개별 사업의 담당자들도 각각 존재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관리하는 것은 제 몫입니다. 그리고 모든 도서관이 함께 모여 하는 책축제와 저희 소속 모든 도서관이 함께 진행해야 할 협업 사업들의 기획과 진행도 제 몫입니다. 


어쨌든 1, 2월에 주로 업무 계획을 수립하고 3~10월까지는 계획한 것들을 진행합니다. 


그 중 9월부터는 내년도 본 예산에 대한 계획을 수립합니다. 다시 9월부터는 내년 사업을 준비해야하는 시기입니다. 또 10월엔 도 의회의 행정사무감사가 있기 때문에 자료 요구가 많습니다. 그리고 행정사무감사가 끝나면 11월엔 내년도 본예산 심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9~11월이 가장 바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9월은 독서의 달과 10월에 책축제가 통상적으로 있어서 더욱 바빠집니다. 사실 지난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는 거의 매일 야근에 휴일 출근으로 정신없이 지냈답니다.




4. 어떻게 지금의 일을 하게 되셨을까요?


대학에서 영어교육과를 주전공으로 하였습니다. 저는 사범대학 출신인데, 보통 주전공 말고도 복수전공까지 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복수전공으로 생각했던 여러 과들이 있었는데 특수교육과와 문헌정보교육과 였습니다. 그 중에 문헌정보교육과를 선택하여 복수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문헌정보학과의 인연은 친언니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친언니가 당시 마을 안 작은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사서자격증의 존재를 알고 문헌정보학과에 대한 정보를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진로는 중등교사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사범대학에 영어교육과로 진학했으나, 복수전공으로 문헌정보교육과를 전공하면 자격증 2개가 더 나온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저는 영어교사, 사서교사, 그리고 정사서2급 자격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쯤 확실한 진로를 정했어야 했는데, 영어교사의 길보다 사서교사의 길이 더 저에겐 맞았다고 판단하여 사서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4학년 졸업하던 해(2009년)에 본 첫 교사 임용시험엔 아쉽게 낙방했습니다. 


졸업하고 고향인 제주로 내려와 이듬해 지방공무원시험에 응시하게되었고(2010.5월) 그때 사서직렬로 응시하여 합격하여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서교사가 목표였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은 사전연습 겸 응시한 시험(중등학교 교사 임용시험은 보통 11~12월이고, 공무원 시험은 그 당시 5월 이었습니다)이었는데, 합격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원래 제주시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서 서귀포시 라는 곳 자체가 생소했거든요. 대학교도 제주에서 나오지 않아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막상 와보니 서귀포가 주는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기후,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말 친절한 우리 동료 주무관님들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서귀포로 오지 않았다면 제 인생은 많이 우울했을거 같아요. 운명처럼 오게 된 이곳에서 13년째 사서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5. 그 전에 하셨던 일들은 무엇이었나요?


아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제 첫 직장입니다. 그 전에는 쭉 학생이었습니다.



6. 어떻게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하는 일은 사서직 공무원입니다. 사서자격증은 필수로 있어야 합니다. 공무원 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준사서 자격증 이상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일단 어떤 도서관에 일을 하든 간의 기본적으로 사서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사서자격증은 한국도서관협회에서 발행하고 있습니다. 준사서, 정사서2급, 그리고 정사서1급 자격증이 있습니다. 준사서는 1년짜리 사서교육원 코스를 졸업하면 받을 수 있고요, 준사서 자격으로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4년제 대학의 학사과정으로 있는 문헌정보학과(혹은 문헌정보교육과)가 있습니다. 이 곳을 졸업하면 정사서2급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 중에 공주대학교는 유일하게 사범대학 안에 문헌정보교육과가 있어서 정사서2급과 사서교사 자격증 2개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런 케이스입니다.)


하는 일은 사서라고 포괄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그 중 지자체나 교육청 소속의 사서직 공무원이 가장 안정적으로 사서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제주, 특히 서귀포에서 사서로 일하기 위해서는 절대 다수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전국에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는 위탁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이 많습니다. 시민들이 보시기에 모두 똑같은 공공도서관의 간판을 달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부의 운영주체는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 혹은 시설관리공단, 문화재단, 사회복지법인 등 다양합니다. 제주도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도서관 즉, 공무원의 신분으로 일을 하게 되는 곳이 대부분이고요. 위탁 도서관들은 신분은 재단의 직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통 지자체 소속의 사서직 공무원이 되려면 똑같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면 됩니다. 공무원 시험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봤을 당시에는 (2010년) 공통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 이렇게 응시를 하고요, 사서직 공무원은 전공과목인 자료조직개론과 정보봉사개론해서 총 5과목을 응시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시험을 보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7. 일을 하면서 만족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제 일이 저의 적성에 참 잘 맞는다는 점입니다. 문헌정보학, 공공도서관은 마중물과 같은 곳입니다. 거기 속에 사서는 얕지만 넓게 두루두루 모든 주제 분야를 망라적으로 알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시험 성적과는 별개로 잡다한 지식의 능한 아이였습니다. 어쩌면 이런 저에게 사서라는 직업은 천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다 알 순 없습니다. 저는 인공지능 로봇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사서는 여러 분야의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특히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죠. 


그리고 저는 힘이 셉니다. 체력도 좋고요. 그리고 키에 비에 팔도 긴편이에요. 이게 사서일과 무슨 상관일까 싶지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사서는 대출대에 앉아 고고하게 차 마시며 책이나 빌려주고 반납 들어온 책을 원래 자리로 정리하는 그런 일만 한다고 생각 하시더라고요. 현직 사서가 쓴 책 제목 중에 “사서가 바코디언이라뇨” (김지은, 부크크) 이라는 것이 있을 정도니까요.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그건 사서가 하는 수많은 일들 중 아주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방학 때 마다 시청에서 실시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에 도서관에 걸리면 대학생 친구들이 “대학생 알바계에 해병대”에 간다고 말을 할 정도라고 합니다.



책은 무게도 정말 많이 나가고(이삿짐 업계에서도 책 많은 집을 젤 싫어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서가는 생각보다 높습니다. 7단 서가 젤 윗쪽 책을 꺼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키가 크면 유리하지요. 저는 성인 여성 평균키를 조금 넘는 키이지만 팔이 길어 다행히 서가 젤 윗단에 있는 책도 잘 찾습니다. 이정도면 저 사서에 아주 딱이죠?




8.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사서로 일하는 점에서는 힘든 점이 솔직히 없고요, 공무원으로 일하는 점이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사서직 공무원이라면 항상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 비슷하게 오는 경우가 있을겁니다. (물론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서’의 자세와 ‘공무원’의 자세 이 2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서’로서는 자료의 선택과 수집, 그리고 이용자들에게 잘 소개하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이 중요한 것이고요, 프로그램 및 행사 등도 결국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책읽기가 일상화 될 수 있도록 하는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근본은 책과, 책읽기에 있지요. 사서로서의 자세는 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죠. 


공무원의 자세도 결국 시민께 봉사하는 것이 주 맥락입니다. 사서랑 크게 다른 건 없죠. 결국 책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매개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요. 하지만 저희가 하는 행정업무는 가끔 너무 많은 자료와 절차들이 있어서 가끔은 본질이 흐려지고 형식만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런 것들에 얽매여 일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제 노력과 시간이 많이 투자될 때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좋은 동료와 선배님들 그리고 그간의 제가 쌓아온 시간들이 이런 부분의 업무 능력은 빠르게 좋아지고 있는 부분이에요.




9.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시작하려는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잘하고 있으니 그렇게 계속 네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건강. 이 세가지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잘하고 있어!




10. 제주에서 지금의 일을 한다는 건 어떤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저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 대학 4년을 잠시 타 지역에서 보낸 것 외에는 쭉 제주에서 살았습니다. 솔직히 제주도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 똑같지요. 그리고 저에게는 타 지역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으니 비교군이 없는 점이 어떤 특별한 점을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굳이 꼽아보자면 아무래도 고개만 돌려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연환경의 소중함 아닐까요? 


저는 지금 현재는 서귀포시에 거주 중입니다만,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출퇴근도 오래 했었고, 서귀포시내 동지역에서 동쪽 표선면으로 출퇴근도 2년정도 해봤는데요, 출퇴근 길에 긴장감과 고단함의 정도는 다들 비슷하겠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다르니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 같은게 다르긴 하더라고요. 한라산의 숲내음을 맡으며 넘나들던 제주시와 서귀포시 사이에서의 출퇴근과 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일몰을 보며 돌아오는 퇴근길의 낭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제주도 시골 사서의 하루 라는 주제로 브이로그를 찍어 올린적도 있는데, 꽤나 반응이 좋더라고요. 어쩌면 제주에 살고 있다는 점 하나가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