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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리 삼번지 Apr 11. 2023

두려움에 대한 고백

(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9. 시간과 자기 의지)


첫 번째 두려움.

나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알약을 무서워했다. 알약이 먹기 싫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할 정도였다. 매번 알약을 삼키는 게 두려워 쓰디쓴 가루약을 선택했다.

그랬던 내가 알약을 먹기 시작한 건 사소한 계기였다.


20대부터 급작스레 심해진 생리통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내가 무서워했던 건 목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싫었던 것뿐,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삼키는 법을 터득하니, 알약은 식은 죽 먹기였다. 사실, 생리통이라는 아픔이 두려움보다 컸던 모양이다. 아픔을 잊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이다.


불현듯 깨달았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생각보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재작년 겨울.

결혼식을 앞두고, 신혼집에 먼저 입주하게 되었다. 자취를 해본 적도, 집을 떠나 생활해 본 적도 없다. 막막했지만 설렘을 안고 신혼집에 입성한 첫날,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남편과 함께 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동네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바로 몇 시간 전만 해도 “우리 집”이라는 개념은 부모님과 함께 있는 집이었는데 이제는 나와 남편의 집이 돼버렸으니 미묘한 감정이 들더랬다.



나에게 또 다른 두려움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 감정을 떨쳐버리기까지 생각보다 꽤나 시간이 걸렸다.

흔히 말하는, 결혼 전에 겪게 된다는 메리지블루까지 겹쳐버린 듯했다. 퇴근 이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내게는 너무 낯선 곳이었고, 낯선 건물, 낯선 동네였다. 남편도 없이 홀로 있는 공간을 바라보고 있자니 울적함이 올라오고, 밤에 잠이 들기 전엔 남편이 곁에 있음에도 눈물이 나왔다.


일부러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우울한 감정에 마냥 매몰되지 않고자, 한정된 시간 속에서 더욱 바삐 살았다.

매일 회사 일에 더욱 몰두하고 비어있던 집을 가꾸어 가며, 매 주말은 남편과 운동을 하고 관심만 가지고 있던 베이킹을 하기 시작했다. 가끔 본가 식구들과 만나게 되면 그 시간에 더욱 최선을 다해 충실하고자 했다.

시간이 흘러 본식에, 신혼여행까지 무사히 다녀온 나는 어느덧 기혼생활 1년 2개월 차다. 그간의 눈물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너무도 잘 적응한 상태다. 



그 시절, 내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들은 무엇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때의 두려움은 해결된 게 아니라 시간으로 극복한 것이다. 순간의 두려움을 애써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당시의 두려움은 무엇이었을까?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이것을 잘해나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해 불안정한 느낌. 막연한 두려움이었으리라.



백수가 된 이후, 나에게 새로운 두려움이 생겼다.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점점 가라앉아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역시나 앞선 스토리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여전히 겁쟁이다. 나는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호언장담 뒤로, 두려움을 숨겼다. 더군다나 굳이 좋은 소식이 아니면, 말을 아끼는 타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려움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게 쉽지 않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티 내는 건 더욱 어렵다. 점점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오늘 하루를 알차게 보내자. 청소, 공부, 운동, 드라이브, 글쓰기, 그 외의 모든 것.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하건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두려운 순간을 이겨내는, 감당해 내는 나만의 방법이다.

내 안에 자리 잡은 두려움의 몸집이 커져가기 전에, 다른 감정을 주입시켜야 한다. 내 안의 감정들을 환기시켜야 했다. 지금 나는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 일말의 부정적인 감정은 모두 떨쳐내야 한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불안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잊힌다. 그러나, 비단 시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있기 마련이다. 당시에 흐트러진 내 감정 혹은 상처 입은 기억, 두려움, 저하된 의욕은 어떻게 회복되는가? 마냥 시간에만 기댈 순 없다.


시간과 자기 의지.

이 두 가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것이다.

두려움을 견뎌내고자 하는 용기, 이겨낼 수 있으리라 하는 마음 가짐, 자신을 믿고 감내하는 의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내는 시간을 스스로가 감당해 내야 한다.



나는 오늘도 이 시간을, 이 순간을, 이 의지를 감당해 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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