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8. 현실에서 깨어나기)
현실에서 깨어나는 것.
나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람이다. 당장 내 앞에 놓인 삶의 과제가 최우선이다.
이 과제들을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애써왔다.
학생 시절엔 대학입시를 생각했고, 대학생 시절엔 취업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직장인 시절엔 진급과 연봉 협상이 하나의 과제였다.
그래서인지 늘 여유가 없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발 동동 거리던 나의 모습만 기억날 뿐, 당시의 내 감정과 생각이 흐릿하다.
흔히 말하면, 다음 퀘스트를 위한 과정들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퀘스트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 끝을 찾았느냐고? 아니다. 삼십 대에 진입한 이후, 미지의 세계에 빠진 듯하다. 제자리걸음이었다. 연료는 충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고장이 심해지는 듯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을 잠시 멈추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다음 퀘스트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
현실적인 게 정답이 될 순 없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누구나 그렇지 않나?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지독히도 현실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즐겨야 하는, 즐겨야 했던 것들이 있다. 나는 그럴 깜냥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게 못내 아쉽다.
<다음>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보낸 시간으로 "난 열심히 살고 있다."라고 자부했다. 쓸데없는 마음의 안정이었다.
더 이상 조급함을 느끼기는 싫다. 더 늦지 않게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누군가가 본다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배부르고 등따수우니 절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지난 과거에서 부단히 노력해 왔고, 열심히 달려왔다. 그 결과로 지금의 나는 적당히 배부르고 알맞게 따뜻하다.
현실적이었던 지난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지난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들어준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배부른 고민을 하게 만들어준 고마운 순간들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항상 있다.
정답은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정답과 오답의 문제가 아닌,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주관의 문제인 것이다.
그동안 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나는 지독하게 현실적이었다.
이제 와서 이상을 동경한다. 마냥 내 미래를 위해, <다음>을 위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나>를 위한 순간을 누리고 싶다. 내 꿈이 뭔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어떤 건지,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이상향을 그려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