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안녕, 30대는 처음이지? - 7. 끼리끼리는 사이언스)
#끼리끼리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고, 비슷한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알아보게 돼있다. 삼십 인생 살면서 엄청난 인맥을 소유하진 못했지만 나에겐 찐득한 우정을 자랑할 수 있는 친구 두 명이 있다. 이 두 친구와는 벌써 16년째 각별한 사이이다.ㅡ우스갯소리로 나중에 할머니 돼서 실버타운 같이 들어가자고 약속까지 했다.ㅡ 어릴 땐 몰랐는데 커서 보니, 우리 정말 많이 비슷하구나? 싶었다.
비슷하다는 건, 어떻게 보면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일일이 따지고 보면, 우리는 식성부터 다르다. 한 명은 해산물을 싫어하고, 또 다른 한 명은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싫어한다. 좋아하는 노래도, 이상형도, 추구하는 스타일도, 각자 다르다. 이렇게 보면 우린 정말 다르다. 근데 왜 비슷하다고 느꼈냐고? 바로 사람에게 느껴지는 분위기이다. 사람 냄새. 나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우리가 만나면 하는 얘기는 늘 비슷하다.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옛날 옛적 이야기도 하고, 지금 사는 이야기, 실없는 농담, 오늘의 관심사, 현재의 이슈,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그냥 서로의 이야기가 재밌고 즐겁다. 그런 대화 끝에 나는 항상 안정감을 느낀다. 서로 하는 일은 달라도, 사는 지역은 다를지라도, 이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항상 든든하다. 가족과도 다른 애정이다. 친구들에겐 늘 나와 같은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랑보다_진한_우정
그런 친구들에게 말 못 한 사실이 있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었지만, 16년간 이어진 우정임에도 말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기나긴 세월이 지나고 이제 와서 말하자니, 새삼스럽기도 해서 차일피일 미루던 찰나였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결혼식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서운함을 내비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친구들은 의외로 그게 뭐 어때서?라는 반응이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맞아, 그게 뭐 어때서?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만약 내가 아닌 친구가 이제 와서 밝힌 비밀이 있다 한들, 그게 뭐든 무슨 상관일까 싶다. 우리는 이미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친구이자, 앞으로 남은 인생을 같이 걸어갈 동지이다.
친구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울 때, 기념일이거나 혹은 무슨 일이 있을 때, 본인이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네가 무슨 선택을 하건, 어떠한 시간을 보내건,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나는 그래도 언제나 너의 곁에 있으리라. 외롭지 않게, 슬프지 않게, 두렵지 않게, 너의 인생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나는 무조건 너의 옆에 있을 거야.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에게 매일 전하고 싶은 말이다. 애틋한 이 마음이 너희에게 100% 가감 없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글에_대한_소회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사람, K였다. 첫 만남임에도 두 시간 남짓 대화가 이어졌다. 그걸 통해 느낀 바가 있느냐고? 물론이다. 나는 내가 글을 좋아하지만 예술적 감성을 지닌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이성적인 면모도 있고,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완전한 감성적 성향은 아니란 뜻이다. 서로의 흥미와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화 주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이어졌다.
K는 요즘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원래도 기도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요즘엔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감사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고 한다. 이 감사 기도는 사실 종교적인 느낌보다는 스스로가 바라보았을 때 현재의 상황, 시점이 벅차오르고 고마워서 저절로 나오는 자기 주문과도 같다. K의 얼굴은 정말 행복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러다가 요즘 하는 일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백수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사실 표면적으로 내세울 명함이 없다. 원래의 나라면 "그냥 이직 준비 중이에요."와 같은 대답으로 스스로를 숨겼겠지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글을 쓰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글 쓰는 걸 좋아해요?
-네, 저 글 좋아해요!
당당하게 내뱉고도 스스로가 놀랐다. 내가 이리도 당당했던 적이 있던가? 회사원이던 시절엔, 무슨 일 하세요?라는 물음에 그냥 회사 다녀요. 라며 힘없는 대답만을 고수했던 내가, 지금은 너무도 당당하다.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글에 대한 마음이, 생각보다 더 확고했다.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내가 글을 사랑하는 마음은 1초의 망설임이 필요 없는 순수한 감정이다. 내세울 대표작은 없지만, 습작을 반복하는 일개 글쟁이일 뿐이지만 글에 대한 설렘, 타자를 치는 즐거운 순간들은 분명하다. 이 시간들은 헛되지 않고 나의 초석을 다듬어줄 순간들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