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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리 삼번지 Mar 31. 2023

[30대에 떠난 유럽여행] 그들의 삶에 녹아들기

서툴지만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



럽의 교통수단은 지하철, 버스, 택시, 그리고 트램이 있다. 이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놀란 것은 반려견들과의 동승이었다. 우리나라는 강아지와 함께 이동하기 위해서는 켄넬이 필수다. 그러나 그 마저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수가 불편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려견의 덩치 크기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함께 동승한다.ㅡ물론 리드줄은 당연하다.ㅡ 다수의 승객들도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다. 반려견들 또한 일상인 것 마냥 자연스럽다. 반려견답게,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 딱 그 모습이었다. 나는 또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날씨가 시시각각으로 변했던, 마냥 신기했던 헝가리의 둘째 날.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이들은 대체적으로 여유롭다. 급한 것이 없다. 해외에 나가면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깜빡일 때 뛰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정말 딱 그 말이 맞았다. 모름지기 빨리빨리의 민족,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나 또한 한국인으로서 빠른 일정을 소화하고자 여행 초반에는 초록불이 깜빡일 때마다 뛰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ㅡ이들의 신호 체계는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걸 첫째 날 알았다. 지나치게 불이 빨리 바뀐다는 것을.ㅡ 점차 느긋한 마음으로 변했다. 최대한 빠르게 각 나라를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조급할수록 이 여행을 잘 즐기지 못할 것 같았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가고 존중하기로 했다. 




 체코 식당에서의 일이었다.

첫날 식당에서 덤터기를 맞고, 신중하게 고른 식당이었다. 생각보다 더 맛있던 슈니첼이었다. 제법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남은 맥주를 마시던 중이었다. 서버가 다가와 다 먹었냐고 물어보고 바로 그릇을 치우는 것이었다. 조금 더 쉬엄쉬엄 식당에 머물 심산이었는데, 머쓱해졌다. 다 먹었으니 나가라는 건가? 이유를 알 수 없어 눈치를 보다가 계산을 하고 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 문화에서는 다 먹은 그릇을 바로 치우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전혀 달랐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삭막한 유럽"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체코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순간, 눈부시도록 아름답던 하늘이었다.


또한, 이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 들고 다니는 가방, 입고 다니는 옷들은 다들 조금씩 닳은 모양새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대다수가 그랬다. 또한, 운전해 다니는 승용차도 마찬가지다. 신차를 보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한번 사면 오래도록 쭉 입고, 신고, 쓰는 것이다. 남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깨끈이 해진 책가방을 메고 길거리를 지나가던 학생들의 모습, 닳고 닳은 반스 신발을 신고 지하철을 타던 젊은이의 모습, 유행과는 전혀 상관없이 편의성만으로 똘똘 뭉친 외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유독 많이 보였던 골목골목의 올드카까지 말이다. 여행을 간답시고 새 신발을 사 신고 온 내 모습이 제법 우스워 보였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 영향을 주는 것일까, 나는 조금 궁금해졌다.




리나라와의 차이점.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색다른 교통수단으로 24시간 운행하는 트램이 있다. 24시간이라는 걸 듣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어다녔던 한국에서의 모습이 생각나더랬다. 교통권 또한 우리나라와 다르다. 우리나라는 교통카드를 찍고 환승하는 시스템이지만, 이곳에서는 교통권을 사야 한다. 현지인 혹은 장기로 체류하는 경우라면 어플로 정기권을 구매하겠지만, 객지에 잠시 머무는 나와 같은 처지라면 지류로 된 일일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교통권 판매기에서 구입한 표를 첫 교통수단에서 기계를 통해 펀칭을 해야 한다. 펀칭은 말 그대로 교통권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 펀칭을 한 날짜와 시각 또한 찍힌다. 검표는 다소 복불복인데, 헝가리에서는 매 지하철마다 검표를 했다.ㅡ다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일일권도 어플로 구입 가능하다.ㅡ


부다페스트(헝가리)의 교통권으로, 나는 주로 10회권을 끊어 이용했다.


두 번째, 화장실은 유료다. 밥을 먹은 식당이나 커피를 마신 카페에서의 화장실 이용은 자유롭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길거리의 화장실은 모두 이용료를 내야 한다. 심지어 문화재와 같은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화장실만을 위해 돈을 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에서의 유료 화장실은 소액이긴 하지만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강박적으로 식사 후나 커피를 마신 후, 무조건 화장실에 다녀왔다.


세 번째, 벤치가 많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공원 혹은 길거리에 벤치가 상당히 많다. 힘들면 그냥 쉬어가도 된다. 우리나라에서 잠깐 쉬어가기 위해 카페를 찾는다. 길거리에 앉아 있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특정 공원조차 사람이 많아, 자리 잡기 어렵다. 한마디로 일반 시민들이 쉬어갈 공간이 부족하다. 수도권에 사는 나로서는 너무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이곳은 누구나, 이유 불문, 그냥 앉아 있을 공간이 충분하다. 나 또한 여행 기간 동안 이 벤치를 너무 잘 이용했다. 아직도 잊지 못할 순간을 꼽으라면, 놀이터가 딸린 헝가리의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 멍하니 젤리를 질겅질겅 씹던 순간이다. 옆 자리에는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요가를 하던 여성이 있었다. 까르르 웃으며 뛰놀던 아기들의 모습, 맞은편 자리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들의 모습, 유모차를 끌며 대화를 나누던 두 남성의 모습, 그 모든 것이 선명하다.


멍하니 앉아있던 부다페스트의 어느 한 공원. 맑은 날은 아니었지만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처음엔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러나,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한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서투른 속도로 차근차근 걸어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체감하게 됐다.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이 여정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언지 해답을 얻고자 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그랬다. 장황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일말의 바늘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보내고 있는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해답을 얻었느냐고?


여행 중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아직도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뭘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어느 것이 나에게 정말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번 여행으로 큰 깨달음을 얻길 바랐는데 아직 그만큼 깨닫지는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라는 결론으로까지 도달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은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나를 위안하고 싶다. 아직은 생소한 풍경, 즐거움, 신기함, 호기심을 더 즐기고 싶다.


석양마저도 감동스러웠던 어느 저녁 날



는 하늘을 좋아한다.

장소불문 가만히 앉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같은 하늘 아래 지구에 살고 있는 이곳이지만, 우리나라의 하늘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가장 많이 올려다본 곳이 하늘이다. 구름이 참 이쁘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푸르른 초원에 파아란 하늘, 퐁실하니 하이얀 구름, 이보다 더 이쁠 수가 있을까?

감히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다. 이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해 한국까지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냥 오래도록 눈에 담아놓을 뿐이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가며, 너무 귀여워 보이던 트랙터와 트럭.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설레면서 생소하고 낯선 이 느낌, 언제 또 느껴볼 수 있을까. 길거리에서 파는 소시지 하나에 행복해하고, 기차역 슈퍼에 파는 샌드위치 하나에 즐거워하는 여행. 언제 또 느껴볼 수 있을까.

실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모자라지도 않았다. 내 삶에 있어서 이번 경험은 큰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오스트리아의 하늘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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