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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Dec 21. 2020

두 아들의 부재 (不在)

하루하루는 빼앗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간다.

이제 이 글이 백 번째 글이 아닌 백 번째 글이 되었다. 중간에 인사말이 있어서 이 글의 순번은 100번째이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99번째의 글이다. 하지만 글의 순서처럼 100번째 숫자를 달고 쓰는 글이라 의미가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 동안 어떤 글의 주제를 가진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자기 전 불현듯이 떠오른 생각으로 지금 열두 시가 되어가는 시간에 키보드를 잡았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내가 밖에 나가지 못한 채 두 아이들과 집에만 있은지도 거의 3주라는 시간이 되어갔다. 그나마 마트나 어딘가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가지는 않더라도 중간중간 주마다 드라이브를 갔었는데 눈이 오는 주말도 있었고 날도 추워 주말에도 집에만 있어야 했다. 그러자 스트레스는 결국 쌓여만 갔고 나는 그 스트레스를 풀어나갈 돌파구가 필요했다. 원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는 걸로 푸는 편인데 그것마저 쉽게 되지 않아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주 주말에는 양가의 부모님께 아이들을 한 명씩 맡기자라는 생각이 들어 연락을 드렸고 부모님들께서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늦은 오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만 봐주시기로 하셨다

아이들을 저녁을 먹이고 한 명씩 맡기며 왔다 갔다 하는 움직이는 시간으로 인해 토요일 오후는 온전히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들로부터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고, 그 날에는 신랑과 함께 영화도 한편 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영화를 다 보게 되고, 방송 프로그램에서 범죄 수사에 대해 고충이 있는 장면들을 보다 어느덧 시간은 일요일 새벽인 1시가 되었다. 그래서 안방으로 들어가 두 아이가 내 옆을 지키면서 잤던 자리로 들어가 혼자 눕는데 양쪽으로 허전한 것이 뭔가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혼잣말로 말했다


"원래 오른쪽에는 인덕이가, 왼쪽에는 현덕이가 자고 있었는데"

라고 말하며 이불을 어깨부터 발까지 덮어쓰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두 녀석들이 출가를 하거나 군대를 간다면 아마도 나는 이런 시간들을 추억하며 그리워하겠지, 무척이나 쓸쓸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드는 가장 큰 감정은 바로 상실감이란 감정이었다.

그렇다. 오늘 내 글의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상실감이란 주제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울감을 느끼며 누군가보다 사는 게 못하다면서, 토요일 날 저녁에 발표하는 복권을 구입하며 남들보다 더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하루라도 행복 해기를 원한다. 나 역시도 문득 복권을 사야지 라는 생각은 결혼을 하기 전에는 하지않았으나 아이들을 낳고 나서 육아로 인한 지출이 많이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는 조금 나을까? 나도 부잣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조금 더 좋은 학업과 직장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을 비교하며 다른 아이들은 이런 발달 과정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상실감과 우울함으로 살아왔었다.


그런데 그러한 상실감과 우울함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당장 내일 내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또래와 같은 발달을 가진 아이로 달라지는 경우도 상식적으로는 힘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우울감을 어떤 식으로 떨칠까 생각을 하다가 생각을 한 것이  우리는 우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수명은 오래 살아도 100년이라고 한다. 각종 매체에서는 100세 시대라며 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못한 수명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으며 원치 못하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다. 그중에는 내가 왜 죽는지 모르게 죽어가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빼앗기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엄마의 뱃속에서 혼자 태어났으니 이 세상에 나라는 인간은 나 혼자 밖에 없으며

내가 가진 감정을 누군가 완전히 이해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세상에 넘쳤다. 그러니 행복이라는 감정을 늘 원하고 바랄 수밖에 없고 하루라도 더 잘 살아가기를 위해 남을 부러워하며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들을 더 크게 바라본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일까?


코로나라는 말도 안 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단순했던 일상생활의 행복과 즐거움마저 빼앗겨버렸다.

신이 존재한다면 작년 가을 무렵부터 올해까지 정말 너무하신 게 아니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로 크나큰 상실감을 안겨주셨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내년에는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제 코로나라는 걸 배제하고 원래의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다면 누군가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하는 것보다 조금은 재수 없는 인간이지만


"쟤는 나보다 돈이 많지?"

"재는 나보다 공부를 잘했지?"

"재는 나보다 가정환경이 좋았어"
"재는 어느 직장을 다닌다는데"


라고 나와 남을 비교하며 나에게서는 없는 不在하지 않는 것들을 찾는 것보다 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는,

오로지 나만 가질 수 있는 나의 장점과 단점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에게만 있는 것들을 보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것들을 욕심을 내거나 가지지 못할 때 상실감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를 한탄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자신들에게 강력한 게임에서 불리는 필살기 같은 것들이 내면에 존재한다.

게임 속 각자의 캐릭터에서 나오는 필살기와 능력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누구보다 못한 존재는 없으며 누구보다 잘난 존재 역시 쉽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우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자연의 순리에 맞춰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어쩌면 사람의 마음 속에는 배고픔과 우울한 감정은 비슷해서 그러한 생각들을 느낄 때에 맞춰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차피 하루하루 시간을 빼앗기며 사는 삶을 살고 있으니 상실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하루라도 나를 자랑스러워하며, 북돋아주며, 나도 잘난 인간이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이들이 많았으면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쳐주고 싶다.


"산수에서도 뺄셈을 하는 건 어렵고 마음에 안 들어 , 그런데 사는 것도 뺄셈이라 돈을 벌어도 온갖 것들이 다 빼앗아 가네. 이렇게 빼앗기며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더하기를 할만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남이 아닌 나를 나 자신을 남들을 부러워하는 뺄셈과 같음 마음으로 나 자신을 0으로 만들지 말라고 ,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날 빼앗기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그리고 상실감과 우울한 마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그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두 아들의 부재로 인해 무슨 글을 쓸까 라는 마음과 허전한 마음으로 내 자신은 0이 되었었는데 , 0에서 오늘도 또다시 하나의 글을 쓰게 되어 이 한개의 글은 100번째 글을 완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분명,0이 라는 숫자도 1이 될 수 있고 100이 될 수 있듯이 우리는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으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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