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세면대에 인사하듯 머리를 처박았다. 잠시 동안 잠잠했다. 그러다 또다시 헛구역질을 두, 세 번 반복한다. 요즘은 헛구역질을 해도 음식물이 나오지 않는다. 투명하고 끈적한 침이 입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는지 입술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가 이내 힘 없이 세면대로 뚝ㅡ 떨어진다.
'촤아아아아'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 물로 입 주변을 닦아낸다. 입에 한 모금 물고 꾹적꾹적 가글하고 내뱉는다. 그리고 세면대 옆을 '힐끗' 본다. 그곳에는 두 줄이 선명한 테스트기가 놓여있다.
'오늘도 밥을 먹기는 틀렸네.' 고기처럼 냄새가 강한 식재료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상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이렇게 헛구역질을 하고 나서는 그나마 상큼한 걸 먹으면 울렁임이 좀 가라앉는다. 매일 과일만 먹고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억울함과 슬픔이 뒤섞여 내 몸안에서 액체화가 된 모양이다.
나는 임산부가 아니다.
세면대에 있던 테스터기는 임신테스트기가 아닌 배란테스트기이었다.
결혼 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배테기(배란테스트기의 줄임말). 임테기(임신테스트기의 줄임말)는 플라스틱형으로 큼직하다. 종이형 임테기는 주로 핑크빛이다. 마치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의 색처럼 말이다.
반면 배테기는 플라스틱 형을 거의 찾기 어렵다. 배란일 전후에 여러 번 체크를 해봐야 하는 테스트라서 그런 것 같다. 종이형은 초록색이나 파란색이다. 한 때는 그 초록색이 새싹이 색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파란색을 보면 내 배에 있는 주삿바늘이 만든 시퍼런 멍의 색인 것만 같다.
나는 핑크색 테스트기에서 단 한 번도 두 줄을 본 적이 없다. 이제는 배테기에서나마 두 줄이 보이면 감사해야 한다.
화장실 수납함에는 핑크색 임테기보다 푸른색 배테기가 훨씬 더 많다. 임테기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선반에 올려놨다. 혹시 누가 볼까 숨겨놓는 듯 말이다. 배테기 또한 더 이상 사지 않을 계획이라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이제까지 수백 개 아니, 어쩌면 천 개도 넘게 썼을 테니까. 사실 세면대에 있던 배테기 조차 유효기간이 임박하거나 지난 제품이라 그저 소변에 적셔본 것이다. 종종 호르몬 이상으로 그렇게 두 줄이 나온다.
두 줄이라고 같은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난해부터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다. 시험관을 당장 진행해야 할 정도로 내 난소에는 난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 나이는 30대인데, 내 난소는 50대 중반의 폐경을 앞둔 나이였다. 아몬드만 한 왼쪽 난소는 기능을 다해 쪼글쪼글 작아지고 있다.
폐경이 다가옴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던 건강한 내가 '시험관까지' 해야 할까 망설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험관을 진행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임신을 하려면 난자와 정자가 있어야 하고, 난자가 나오려면 난포가 커야 한다. 내 난소에서 난포가 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담당의는 호르몬제인 프로기노바와 프로베라란 약을 처방해주었고 그것을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복용하고 있다. 그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의 입덧처럼 종일 헛구역질을 해된다.
소파에 앉아있던 나는 내 몸의 식도가 있을 법한 가슴 위쪽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오른쪽으로 몸을 말아 뱃속의 '태아의 모양'처럼 눕는다. 또 눈물이 흐른다.
왜 신은 여성이 태어날 때 난자의 개수는 한계를 뒀으면서 눈물의 양은 무한으로 만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