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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 Dec 07. 2020

#11 엄마의 명백한 거짓말

난임인 딸이 부끄러울 수도 있다


 사람 누구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 나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다. 둘 다 관심받고 싶어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꽤 자유롭지 못하고 예민한 편이다.


 엄마는 잠이 안 오면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있는 프로필 사진을 쭉ㅡ 한번 본다는 말을 했었다. 굳이 연락을 해서 묻지 않아도 누가 어떻게 사는지 다 보인다고 했다.

'얘는 전원생활하는구나.'

'얘는 손주가 많이 컸네.'

'이 부부는 해외여행 계속 다니는구나.'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얼마 전 태어난 언니의 아기 사진이다. 안 그래도 결혼 늦었던 엄마는 마흔을 앞둔 언니의 출산으로 드디어 뒤늦게 할머니 클럽에 가입했다.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




 엄마는 늘 자신의 삶에 불만족하는 사람이다. 요즘 나는

그녀의 불평을 듣다 지치면 이런 말을 해준다.


"엄마, 엄마는 다 가진 거예요.

집이 없어요, 차가 없어요?

남편도 있죠, 자식들도 있죠, 손주까지 있잖아요.

이렇게 다 가진 사람 지구 상에 1%도 안돼요.

누군가는 엄마를 부러워하고,

누군가에게 엄마의 삶이 그저 꿈이에요."


  아주 잠시뿐이긴 하지만 효과가 있긴 하다. 엄마는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더 안 좋은 처지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 사연을 꺼낸다.


"그건 그래. OOO 선생님 있잖아.

아들은 장가도 안 가고 딸은 미국에서 결혼해서

너처럼 애도..(못 낳고 있잖아) 그런 사람들 생각하면 뭐."


 여기서 등장한 OOO 선생님 '아들'과 나는 딱 한번 만난 사이다. 어른들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했다.

 그는 착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큰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 남자가 나를 너무 마음에 들어했는데 내가 단칼에 거절하는 바람에 상심해서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다고 혼자만의 착각하고 있다. 7년 동안.

 엄마에게 내가 누군가에게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잘딸'인가 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처음이 아니다. 보통 이 대화는 여기서 나는 패턴인데 오늘은 새로운 이야기 덧붙여졌다.


 

OOO 선생님은
카톡 사진에 있는 애가
네 아기인 줄 알 거야.



"내가 먼저 언니 애기라고 말 안 했거든.

그 사진이 니 애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딱히 아무 말 안 했지."


 콧마루가 시큰했다. 그 말이 끝나자 나는 '아..'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엄마는 또 다른 소재의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갔지만, 나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을 뿐 눈 초점을 잃은 채 그대로 있었다.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귀에 들리지 않는
명.백.한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굳게 믿는 당당한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울릴수록 내 가슴은 더욱 울었다. 살갗에 닿던 가을바람이 갑작스레 훅내 심장을 통과하는 듯했다. 심장이 시렸다.


 엄마가 밉지 않았다.

 내가 미웠다.

 나 자신이 몹시 미웠다.


 엄마가 평생을 믿어온 '잘난' 내 딸이 어디 한 구석 '부족'해 보이는 게 싫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엄마가 돼 본 적니, 거짓말을 하고 싶었던 부모의 마음을 내가 감히 어찌 알 수 있을까.


 엄마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난임인 '내'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다.

 모든 건 '못난' 내 잘못이다.


 엄마에게 미안하고,

 언니에게 미안하고,

 조카에게 미안했다.

 



 엄마, 미안해요.

 내가 엄마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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