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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 Dec 05. 2020

#9 언니가 임신해서 미안하다며 운다

그 눈물을 앞에서 나는 활짝 웃었다.


난 아기 좋은지 모르겠어.
난 애 안 낳을 거야. 입양할 거야.
생기면 생기는 거고 안 생기면 말고.





 이런 말을 곤 했던 언니가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결혼식은 서울에서 할 예정인데, 언니가 사는 곳 서울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내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 언니 커플보다 먼저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내 결혼식이 첫 번째인 만큼 부모님이 꿈꾸던 크고 평범한 웨딩홀에서 치렀다. 웨딩플래너 없이 결혼했던 경험 덕에 언니의 결혼 준비는 손쉬웠다. 게다가 내가 늘 꿈꾸던 스몰웨딩이라 대리만족을 느끼며 더욱 적극적으로 도왔다.


 준비하는 과정 중에 나는 병원에서 조기폐경 진단을 받았고 언니에게 내가 난임임을 밝혔다. 내가 아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같이 안타까워했다.


 엄마는 언니가 마흔을 코앞에 둔 데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이를 갖지 않을 거라고 내게 말했다. 게다가 '먼저 살을 좀 빼야지..'라면 한숨을 쉬었다. 엄마는 여자가 살이 찌면 자궁에 살이 쪄서 임신을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난임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여자라면 누구나 엄마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언니에게 직접 물었다.


 "혹시 아이 가질 계획이 있어?" 언니는 피임은 하지 않고 있고 생기면 낳을 거라고 대답했다. 계획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AMH 검사를 받아보라고 이런저런 조언을 던졌다. 그리고 집에 잔뜩 쌓아둔 해외직구로 산 영양제 몇 통을 손에 쥐어주었다. 코큐텐(코엔자임큐텐의 줄임말)과 엽산 등등. 





 언니는 과체중이다. 늘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했다. 치킨, 피자, 콜라, 치즈버거, 닭발, 맥주를 좋아했고 자극적인 맛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불어났다. 언니 남자 친구는 게임 마니아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언니와 연애를 하면서 체중이 엄청나게 늘었다. 예전 사진을 보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신랑은 맞춤정장이라 걱정이 없다. 다만 신부는 보통 대여용 드레스를 입는지라 맞는 사이즈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다이어트 한약도 지어주었다.


 언니  맞는 웨딩드레스를 오프라인에서는 찾지 못했다. 결국 인터넷 빅사이즈 쇼핑몰에서 원피스형 드레스를 주문했다. 추석명절에 상경한 언니는 드레스를 입어보려고 우리 집에 왔다. 나와 빈방에 단 둘이 들어갔다.



 나 임신했어.
미안해.
으. 흐. 흐.. 흑..


 

 "정말?? 세상에.. 너무 축하해! 뭐가 미안해! 너무너무 축하할 일이야! 너무.. 너무 잘 됐다. 진짜 축하해!!"


 나는 그녀를 와락- 안았다. 그녀는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비참했다.

 언니가 임신하고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권리 조차 빼앗은 동생이 되었다. 그래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기뻐해야 하는 순간이니까 그늘진 마음은 철저히 다. 내 친언니가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아무 노력 없이 자연임신이 되다니 이런 경사가 어디 있을까. 언니는 나보다 초경이 수년 늦었고 생리주기도 훨씬 길었다. 참 다행이다.

 나는 그 방에서 나와 곧장 그녀의 손에 영양제를 쥐어줬다. 엽산과 철분. 임신 가능성이 희박한 내가 먹는 것보단 임산부가 먹는 게 훨씬 가치 있지 않은가.


 언니는 소식을 알리러 부모님에게로 떠났다.

남편과 나는 둘이 남았다. 그에게 언니의 임신소식을 내 입으로 했다. 그는 내 앞에서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줬다.

사실 그는 얼마 전 하얀 고래가 나온 태몽을 꾸었다. 


언니 결혼식 하객들에게 임신을 알리는 소식지를 만들어줬다. 남편의 태몽은 내가 아닌 언니의 아기였다.

 

 그의 얼굴을 보니, 문득 떠올랐다. 내 앞에 만큼은 마음껏 좋아하지 못할 언니, 형부, 엄마, 아빠의 얼굴. 


그들을 눈치 보게 만든 나.

전부 '나'였다.






 언니가 임신을 위해 쓴 총비용은 3000원짜리 임신테스트기이다. 시험관 1회에 *300만 원가량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 주사 용량과 투여 기간, 난자 채취 개수 등 진행 방식에 따라 개인차가 크다. 훨씬 더 적을 수도, 더 많을 수도 있다.


  코앞에 있는 듯 가깝고도,
영원히 닿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먼
두 단어


 난임과 임신은 어찌 보면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단어이다. 하지만 그녀 인생사전에 난임, 조기폐경이란 단어는 등재되지 않았다. 대신 자임(자연임신의 줄임말)이 등록되었다. 그 이후로 언니는 난임과는 더더욱 멀어졌다.


"자궁 초음파 이제 배로 볼 수 있데!

너무 좋아. 그동안 질 초음파라 힘들었거든."

 내가 난자 채취하는 장면을 보았다면 아마 언니는 이 말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남편 회사 동료는 8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살다가 그냥 자연 임신해서 아기가 생겼데! 혹시 몰라!"

 30대에 조기폐경 진단을 받은 나에게 어울리는 희망의 메시지는 아니었다.


 그 외에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말들.


 그녀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조폐(조기폐경의 줄임말), 난임이 뭐 흔한 일인가.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난임부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지 내 가족조차도 모른다.




임신한 언니가 내가 만들어준 부케를 들고있다.




 나는 언니가 불편해졌다.

 언니가 무심코 던진 말이 사실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자매잖아."

"너 걱정돼서 하는 말이잖아."


 그래, 난 자매잖아. 나는 이모잖아. 무조건적으로 조카를 사랑해야 하고 이 상황을 기뻐하기만 해야 한다.

 언니와 조카를 위해 오늘도 나는 맘 카페에서 아기 옷을 검색한다. 아기 옷을 사서 집에서 열심히 접고 또 접는다.

 한 뼘만 한 아기 옷을 하나씩 접을 때마다 그것을 손수건으로 삼아 펑- 울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너 울기만 해 봐!'라며 나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한다.


언니에겐 아기 크기, 나에게는 손수건 크기


 난 그래야 한다. 나의 친언니잖아, 나의 조카잖아.

나는 힘들어서는 안 돼. 나는 힘들어할 자격이 못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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