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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 Jan 28. 2021

#16 임신을 임신으로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

과배란, 채취, 수정, 배양, 이식 그리고 1차 피검까지


임신을
임신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행운이다



 주변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임신을 '임신'으로부터 시작했다. 나의 언니도 그 중 한 명이다. 따로 날짜를 맞추거나 배란테스트기를 사는 등의 번거로운 일 없이 임신을 했다.(9화 참고) 생리가 없어 혹시나 하고 소변으로 확인한 두 줄짜리 임신테스트기, 그것이 임신의 시작이다.


 임신의 시작 임신확인한 순간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당신은 진정 축복받았다. 두줄의 임신테스트기들고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임신 O주입니다"라고 알려주면 '아, 그 날 밤인가?'라고 기억을 더듬는 장면은 나에게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가능하다. 그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혹시 당신이라면 나는 지금만큼은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부럽다. 아이를 원했다면 말이다.



 난임의 임신은
자기 배에 직접 주삿바늘을 꽂으며
시작된다.



 임신도 안했는데 무슨 주삿바늘이 임신의 '시작'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의 임신은 임테스트기 2줄을 본 시점이 아닌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한 때가 시작한게 아닐까요?'

'아니,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된 바로 그 순간은 아닐까요?'

'아니면, 난자가 난소에서 배란 된 그 때가 진정한 시작일까요?'




 시험관 진행은 난임부부의 다양한 원인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공통의 과정이 존재한다. 난임의 원인이 여성과 남성 중 어디에 있던 간에 대게 여성의 과배란으로 시작된다. 과배란은 먹는 약과 복부 주사가 병행되거나 주사만 단독으로 진행된다.


 주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정해진 시간에 맞아야 하기 때문에 매번 병원에 갈 수 없어 자가주사를 맞는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공중 화장실에서도. 난임부부에게 내 배에 주사 바늘을 직접 꽂는다는 것이 바로 임신을 위한 첫 단계이다. 여성의 난소 상태에 따라 이런 주사를 몇일에서 몇 주까지도 맞는다. 과배란이 잘 이루어졌다면 채취할 수 있는 난자를 가진 난포가 많이 자라 있을 것이다. *수개에서 수십 개까지.


* 나와 같은 조기폐경의 난소기능저하 여성은 주사를 맞아도 난소가 반응하지 않는다. 1,2개의 난포가 자랐거나 아예 자라지 않아 이 단계에서 시험관 시술을 중단하는 경우가 다반 수다.


 채취 전에는 유의사항 및 수정란에 대한 동의서 등 수십 장의 서류에 여러번 서명을 한다. 3-5일 뒤의 채취 날을 위해 질정을 처방하는 병원도 있다. 매일 정을 넣으면  날을 숨죽여 기다린다. 채취 2일 전에는 반드시 정해진 시간을 철저히 지 난포터지는 주사를 자가로 맞아야 한다. 채취는 보통 아침 일찍 이루어진다. 남편은 난자 채취실에 들어갈 수 없다. 난자 채취를 하는 동안 남편은 정자 채취방에서 정자를 채취한다.(남성이 무정자증이라면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수술을 통해 정자를 찾아 냉동을 해야한다.) 


 난자 채취실 시술대 위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있으면 질 소독부터 시작된다. 채취는 보통 수면마취를 하고 진행된다. 난포 개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난자 채취의 과정은 30분을 넘지 않는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그렇게 몽롱한 상태로 귀가한다. 많은 양의 난포를 채취한 경우에는 복수가 차는지 체크해야 한다.



수능처럼
수정란도 등급이 있어요.


수정란은 파편과 분열모양 등에 따라 등급이 메겨진다.


 난임부부들은 격적으로 '숫자'에 연연하기 시작한다. 난포에서 채취된 난자는 몇 개인지, 난자와 정자가 잘 만나 수정란이 된 수는 몇 개인지. 2-3일 동안 병원으로부터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린다. 이때 단지 수정란 개수뿐만 아니라 분열상태나 파편 유무 에 따라 '등급'이 메겨진다. 수정란이 3일 배양인지, 4일 배양인지, 5일 배양인지확인한다. 배양일 또한 시험관 성공확률을 높이기에 중요한 숫자이다. 또 수정란이 많은 경우 냉동할 수 있는 수정란의 개수도 확인한다. 추가적으로 습관적 유산 등을 겪는 부부는 *PGS나 *PDG검사를 통해 이식 전 수정란의 염색체 이상유무를 검사 한다.


*PGS (Preimplantation Genetic Screening)
: 착상 전 유전자 선별검사
*PGD (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
: 착상 전 유전자 진단


 이식 가능한 수정란이 있다면 이식 일정이 잡힌다. 만 35세가 넘으3-4일 배양 배아를 최대 3개까지 이식 가능하다. 3개를 이식한다고 세 쌍둥이를 임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성공 확률이 낮기에 3개의 배아를 이식한다. 그중에 1개라도 착상이 되길 바라며.


 채취했던 그 수술실에 다시 누워 이식을 받는다. 이식할 때 배아의 사진을 보여준다. 현재 몇 세포기인지 눈으로 볼 수 있다. 채취와는 다르게 이식은 좀 더 짧고 마취 없이 이루어진다. 이식 후에는 약 2주간의 기다림이 남았다. 착상을 위해 몸조심한다며 가벼운 일상생활만 하고 누워만 있는 사람도 있고(일명 '공주놀이'라고 부른다.) 평소처럼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2주간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맞거나 질정 넣거나 경구약을 복용하는 등 온몸에 '임신유지호르몬'을 보충한다.


 2주 1차 피검 날이 되면  병원에 방문해 피고 귀가하면 몇 시간 뒤 임신 결과를 유선으로 알려준다. 1차 피검을 통과하더라도 2차 피검과 3차 피검까지 통과해야 안심할 수 있다. 난임 병원 졸업까지 주사나 질정 등의 처방은 계속 이루어진다. 그러다 난임병원을 졸업하면 드디어 '산부인과'란 병원을 다닐 수 있다.






 난임부부에게
임신의 시작은 어디부터 일까?



1차 피검사를 통과했을 때?

배아가 자궁에 착상이 된 때?

수정란을 이식했을 때?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었을 때?

난자와 정자를 채취했을 때?


 누군가에게는 임신 확인 '이후'부터가 임신의 시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임신을 위한 첫걸음이 그것의 시작이다. 그 많은 과정이 임신의 시작이 아니라고 한다면 서글플 것 같다. 그래서 난임부부에게 임신의 시작이란 과배란 주사를 배에 푸ㅡ욱 찔러 넣은 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첫 과배란 자가주사가 서툴러 테이블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임신한 적 없지만
임신의 종료



 1차 피검에서 0점 혹은 현저히 낮은 수치면 비임신으로 통보받는다. 임신한 적은 없지만 임신의 종료이다. 따라서 임신유지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 투여도 중단한다. 다시 도돌이표처럼 과배란부터 시작하면 된다.



 ,

 임신은 시작보다 출산까지 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럼에도,

 당신의 임신이 주사가 아닌 임신테스트기로 시작했다면,

이 글의 모든 과정과 용어가 생소하고,

그것들이 과학시간에 배웠던 이야기인듯 싶다면,

다시한번 나는 그것이 큰 '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열번째 임신이 시작된다.

 푸-욱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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