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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Mar 20. 2024

시와 자아와 카인의 표식

2021년 8월 9일 - 29일 사이의 기록.


'슬프다''예쁘다' -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이다.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낱말들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하고 어여쁘고 그윽하고 투명하고 아리고 애틋한, 다채로운 뉘앙스가 느껴진다.


시를 쓰는 것은 슬픔을 쓰는 일이다.


가장 내밀하고 근원적인 자신을, 연약하고 무지하고 순수한 부위를 내보여야 한다.

말로 하는 예술은 모두 시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노래도 소설도, 시처럼 써야 한다. 가장 개인적인 슬픔을 가장 개인적인 언어로 말해야 한다.

le bouc émissaire innocent (2022)

<좋든 싫든, 헤드윅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중이다. 영화 <헤드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기록인데, 보다 보니 <헤드윅>과 『데미안』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윅이 토미에게 'Gnosis(지식)'라는 이름을 주었지만, 결국 토미에게 부여한 자아는 헤드윅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이었음을 인정하게 되는 점이라든지. 자아를 찾는 여정이라는 소재, 그 여정 끝에 얻은 깨달음을 통해 새로이 태어난다는 메타포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원작자이자 헤드윅 역을 연기한 존 카메론 미첼이 『데미안』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던 요소는 바로 '카인의 표식'이었다. 뛰어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빛나는 이마의 표식.

영화 <헤드윅>의 토미 노시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상 속에서 누군가 존 카메론 미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는 특별했어요. 재능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죠. 그의 삶 곳곳에 로큰롤 정신이 녹아들어 있었는데, 그건 정말 흔치 않은 거였어요.


나는 그가 말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술집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쇼에 가상의 인물과 서사를 끌고 온다는 아이디어도 마음에 들었고, 그걸 perform-수행하는, 공연하는, 연기하는, 혹은 제시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차분하고 지적이며 재치가 번뜩이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용하는 어휘, 말의 높낮이와 속도, 말하는 태도, 말할 때의 손짓, 주제를 전달하는 시적인 방식.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수많은 요소의 유기적인 상호 작용이다. 그 상호 작용의 총합을 우리는 취향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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