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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May 22. 2024

소머즈는 불면증 환자임이 분명하다

못 자서 안 큰 자의 불면 탐방기 (1)

    나는 잠귀가 밝다. 오감이 모두 잘 발달한 편인데, 특히 소리에 민감하다. 아이폰 12 미니를 사용한 지 4년째, 처음 구매했을 때부터 줄곧 알람은 소리 없이, 가장 약한 세기의 진동으로만 설정되어 있다. 그마저도 화들짝 놀라며 깨어나기 일쑤고. 통상적으로 알람을 끄는 건 세 번째 진동음이 울리기 이전이다. 이 정도는 평범한가? 그렇다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청력의 증명을 위한 몇 가지 예시를 더 들어보겠다.


    하나, 내 방과 안방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있다. 두 방의 문은 취침 전에 닫힌다. 그 상태 그대로, 아침에 엄마가 커튼을 열면 나는 잠에서 깬다. 기침을 해도 깬다. 혈압계의 벨크로를 떼어도 깬다.

둘, 유독 주변이 조용한 밤에는 거실 벽에 걸린 무소음 시계의 초침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설치기도 한다. 물론 방문은 닫혀 있다.

셋, 길 건너편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에서 노래를 틀면 깬다, 당연히. 내 방 창문은 두 겹이고, 도톰한 암막 커튼이 빈틈없이 가리고 있는데도.


    어때, 이 정도면 내 비범한(?) 청각에 대한 근거가 되었을까.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다.)


    스무 살에 이사와 7년가량을 거주한 지금의 집은 이전에 살던 곳에 비하면 방음 상태가 엉망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 기준, 밤에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2층인 우리 집에서 아파트 공동 현관이 여닫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작년인가 엘리베이터를 신식으로 교체해서 조금 덜해졌지만, 예전에는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도르래를 타고 올라가고, 저- 위 어딘가에서 다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까지도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니 이 아파트의 얇디얇은 벽이 내 수면에 미친 영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뻔하겠지.

    처음 몇 년 동안은 매일 새벽 심장이 저릿할 정도로 놀라며 몇 번이고 깨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윗집에서 나는 문소리, 발소리가 우리 집에서 나는 것과 거의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크게 들렸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구도 깨어있을 시간이 아닌데 이토록 가까이에서 소음이 새어 들어오니, 비몽사몽한 정신으로는 '우리 집에 침입자가 있다!'와 같은 비이성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2층이면 기어 올라오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높이이기도 하고. 지금은 제법 익숙해졌지만, 그 시기에는 하도 불안에 떨며 자서인지 가위에도 자주 눌렸다.

    공포를 한층 강화한 것은 간헐적으로 출몰하는 동네 아저씨 1의 기이한 행동이었다. 주로 오전 8시 반 경에 등장하는 그 아저씨, 일명 '성악맨'은 복도의 방화문을 힘차게 열어젖히고 들어와 외친다. "이~~~~어!" 당최 이게 무슨 뜻인지 나는 알 길이 없으나, 처음 그 우렁찬 두성을 들었을 때의 경악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과장 조금 섞어서,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가 우리 아파트를 습격한 줄 알았다고. 일찍 잠에서 깬 어느 날, 문구멍으로 확인한 그의 정체가 다소 왜소한, 그리고 평범한 중년의 남성이었기에 나는 약간은 안심하는 동시에 격렬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왜, 멀쩡한 차림새로, 남의 집 앞에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짐작컨대 성악맨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한 층 한 층 내려오며 그 씩씩한 함성을 반복하는 듯하다. 몇 년 동안 시달린 덕에 이제 나는 한 층 높은 3층의 방화문이 닫히는 소리에도 번개같이 눈을 뜨고 그의 도래를 예감한다. 얼마 전에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다가, 그와 현관 앞에서 딱 마주치기도 했다. 방화문을 열고 들어오던 성악맨은 예상치 못한 나의 존재에 겁먹었는지, 헉하고 숨을 들이켜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니 그간의 행동은 강박증이나 조현병처럼 납득 가능한 사유를 가지지 않는, 순전히 자기만족적인 변덕이었을 것이다.

    이제 와 성악맨에게 손해 배상 따위를 청구할 생각은 없다. 어찌 보면 그는, 인간은 확인되지 않은 것에 더 큰 공포를 느낀다는 명제의 증명을 도와준 셈이니까-내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실험은 아니지만. 다만 이제 내 얼굴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번에는 누군가의 집 앞에서 괴성을 지르기 전에 타인의 기분이라는 것을 한 번쯤 고려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이 아침 일찍부터 재미 삼아 괴롭히는 누군가는 이미 기나긴 밤을 견뎠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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