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입니다. 언제부터 교회에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만나는 전도사님이나 목사님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집에 심방을 오시면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축복해 주실 때면 대단한 능력자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시절 교회에서 만난 사역자분들은 지금으로 치면 멘토분들과 같았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때로는 혼나기도 했지만, 그분들의 가르침을 통해 저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배웠고 성경에 대한 지식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교사가 된 것도 사람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대학생 시절부터였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저는 학교, 교회, 집 밖에 몰랐던 저에게 캠퍼스 선교단체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학교라는 일상에 더 닿아 있는 공동체였기에 3학년이 되면서부터 제 삶의 중심은 학교에 있는 캠퍼스 선교단체로 옮겨졌습니다. 물론, 교회 대학부 공동체에서 리더로 섬기는 일은 계속했지만, 그 외의 교회 봉사는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교회 사역자분들과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졸업 이후 교사가 되어서는 자연스럽게 교회 사역자님들과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제 안에는 하나의 오해가 생겼습니다. 목회자분들(솔직히, 어떤 명칭이 정확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은 일상의 삶에서 한 발 떨어진 진공의 공간에서 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설교를 듣다 보면, 목사님들이 만나는 분들이 어떤 분들일까? 상상하게 됩니다. 과연 일상의 어려움을 얼마만큼 알고 계실지 제 안에 불신과 오해가 생겼습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교회 사역을 하시는 분들을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말씀드릴 이 책을 만났습니다. 열일곱 분의 목사님이 함께 쓰긴 책 《내 인생의 한 구절: 말씀이 삶이 되다》입니다. 처음에 이 책을 펼쳤을 때만 해도 세상에서 한 발 떨어진 목사님들의 고담준론 부류의 이야기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고 김기석 목사님의 서문을 읽으면서 ‘아! 내가 큰 오해를 했구나!’ 한방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 하나하나에서 피 맛이 느껴진다. 맹자는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신체를 고단하게 하며 배를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곤궁에 빠뜨려 행하는 일마다 힘들고 어지럽게 한다,”고 했다. 《내 인생의 한 구절》 9쪽
말씀이 삶이 되다
이 책은 1부 말씀이 육신이 되어, 2부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3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각 부의 제목이 저에게는 역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1부 말씀이 육신이 되어는 우리가 기대하는 육신의 성공이 아닌 개인과 가족 가운에 일어난 육체적 고통 가운데 말씀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2부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또한, 저의 기대와 달리 내 삶 가운데 주님이 계시지 않는 삶을 거쳐 말씀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3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의 내용도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의 길이 아닌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으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마음대로 신앙을 규정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주류의 삶이 아닙니다. 아니, 모든 사람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삶입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성공과 밝은 면을 보며 내 삶과 비교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특히, 함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성공과 주목은 저를 나락에 빠뜨리게 할 때가 많습니다.
내 인생의 한 구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 21:18
대학을 졸업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제게 생각나게 하신 말씀입니다. 늘 이 말씀을 기억하지만, 저는 늘 언제나 제가 원하는 곳으로 제가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번번이 저의 시도는 실패합니다. 돌아보면 제 삶 가운데 주님께서 저를 인도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세월이 쌓이고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삶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우직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어렵습니다.
어느 때보다 함께 상대적 박탈감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말씀이 찐 삶이 되는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