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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선 Sep 01. 2022

엄마부터 작업하는 학교

홈스쿨 스토리 2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어진 본분대로 성실히 놀 뿐이었다. 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다 왔다고 믿고 살다가, 대부분의 시간을 엉뚱짓거리로 보내는 것을 눈앞에서 매일 보니 속에서 천불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더이상 사랑의 눈길이 아니었다. 닥달하고 다그쳤다. 나의 눈빛이 불꽃 같아질수록 아이들의 눈빛은 멍해져갔다.

  통제욕구가 미친 듯이 올라오던 어느날 아침, 가만히 서서 나의 내면을 관찰해보았다.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은 너무나 강했고, 그 밑바닥엔 불안이 있었다. 불안하니까 통제하고 싶은 것이었다.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 것이었는지.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무 문제 없었다. 내 안에 원래있던 불안이었다.

  

  그 깨달음 이후로 더 이상 아이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나의 내면에는 왜 이렇게 불안과 두려움이 많은 것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에서 불안이 올라오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그러면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에도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아이들만을 향했던 시선이 나의 내면으로 고정되었다. '이것을 고치지 않고는  아이들을 절대로  키울 수가 없겠구나' 깨달아졌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모든 사건들을 직면하는 시간들이었다. 어린시절 너머 태아적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불안이 어디서 태동되었는지 추적하게 되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많은 심리적인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랬다. 문제는 나였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마다 쌓여온 수치심, 거절감,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어서 아이들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의 불안감을 투영해서 보고, 나의 두려움을 투영해서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실수를 하면 나의 수치심이 자극되었고, 아이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의 불안이 자극되었고, 아이들이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하면 나의 두려움이 자극되었다. 자극이 정도를 넘어서면 폭발로 이어졌다. 아이들이 나를 폭발시키지 않으려면 나처럼 실수하지 않으려 긴장하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하고, 완벽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미친듯이 열심히 해야하고, 두려움에 얼어붙어 도전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엔 아이들은 해맑았다. 실수해도 깔깔웃고, 아무 두려움없이 아무거나 도전하는 아이들이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늘 걱정,염려,긴장,불안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어쩔수 없이 나의 내면을 고치는 작업을 시작했다. 과거 일들을 들여다보다가 슬픔이 올라오면 몇일이고 울었고, 화가 나면 안전한 대상에게 분노를 표현했으며, 우울이 올라오면 누워있기만 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해주었다. '울어도 괜찮아, 화내도 괜찮아,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아..'


  상당한 애도의 시간 후에 아픔들이, 상처들이 하나씩 떠나갔다. 분노도 다 표출하고 떠나보내었다. 이젠 아이들이 예뻐보였다. 해 준 건 별로 없는데 정말 잘 크는 것 같았다. 뭐든지 알아서 잘 하는 아이들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아이들을 믿어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빈둥빈둥 놀아도 괜찮았다. 엉뚱한 도전을 하다가 사고를 쳐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상한 엄마'로 불리기 시작했다. 걱정, 염려가 전혀 없는 모습이, 자식에 대해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이 땅에선 낯선 모습으로 보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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