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락에서 무상급식까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 검사를 했다. 도시락을 열었을 때 하얀 쌀밥만 보이면 야단을 맞았다. 잡곡밥을 먹어야지, 흰쌀밥만 먹으면 건강을 해친다며 ‘혼분식’을 강조했다.
학교에서 그런 영화를 보여 주기도 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여학생은 쌀밥만 먹어서 건강이 나빠졌다가 잡곡밥과 국수를 먹고 건강을 되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주 건강한 학생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 도시락을 다 펼쳐 놓고 영양소 검사를 했다. 가정 선생님은 도시락에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도록 했다. 벼락시험을 보는 것처럼 도시락이 갑자기 시험 문제가 된 듯 단백질이 있냐 없냐, 지방은 몇 퍼센트냐를 따지는데 당황스러웠다.
그날따라 웬일인지 엄마가 달걀부침 하나를 밥 위에 덮어줬다. 안 그랬으면 탄수화물 과다 도시락이 되었을 거다.
그때 엄마들은 자녀들 도시락을 싸 주는 게 큰일이었다. 초등학생은 하나만 싸 주면 되지만, 고등학생들은 점심과 저녁을 먹어야 해서 도시락을 2개씩 준비해야 했다.
여름에는 감자볶음이나 나물 반찬은 절대 사절이었다. 저녁 먹을 때 쉬어서 변하지 않을 걸로 해야 했다. 엄마는 멸치와 콩자반을 자주 싸 줬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나는 멸치와 콩자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교사가 되니 도시락 싸는 게 내 일이 되었다. 엄마가 싸줄 때 반찬 투정을 했지만, 내 일이 되자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혼자 식당에 나가서 사 먹을 수도, 매일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을 수도 없었다.
도시락 때문에 학교 가기가 싫었다. 매일 다른 반찬을 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제야 엄마 고생이 느껴졌다. 결국 제일 편한 소시지, 햄, 어묵을 번갈아 쌌다. 점심시간에 선생님들과 함께 모여서 식사할 때, 나는 내 반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선생님들이 싸 온 집 반찬을 주로 먹었다.
그날은 매끈한 꽃무늬 종이가방에 도시락을 넣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마침 내가 탈 버스가 와서 뛰어가는데 ‘우당탕’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 싶어서 내려다보니 세상에, 종이가방 밑이 터져서 내 도시락이 길바닥에 홀라당 뒤집어졌다. 하얀 밥과 반찬이 여기저기 뒹굴었다. 순간 나는 고민했다.
‘버스냐, 도시락이냐?’
이 버스를 놓치면 최소 10분은 기다려야 하고, 그냥 가면 내 도시락이 하루 종일 길바닥에 뒹굴 텐데. 나는 결국 버스를 포기하고 도시락을 택했다. 길바닥에 엎어진 도시락이 너무나 안 되어 보였다. 어차피 버릴 거지만 길에 떨어진 밥을 깨끗이 주워 쓰레기통에 넣고 도시락과 찢어진 종이가방을 챙겼다.
학교에 오니 선배 교사가 그 광경을 다 보았다며 말했다.
“창피하게 그걸 왜 줍고 있냐? 그냥 냉큼 버스를 올라타면 누구 건지도 모르잖아.”
요즘 나는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부모님도 자녀들의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우리나라 모든 초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무상급식을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스웨덴, 핀란드 정도이고, 가까운 일본도 유상급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 과천시를 시작으로, 거창군에서 무상급식을 시작했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친환경 농산물, 우수농산물, 한우 등으로 급식의 질을 더 향상하고자 노력한다. 올해부터 서울 공립초등학교에서는 우유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급식비 단가도 해마다 높아 2024년 기준 서울(4,098원), 경북(3,960원), 세종(3,881원), 경기(3,856원) 순이다. 교사들은 무상급식이 아니다. 교사들은 학생들보다 조금 비싼 급식비를 내고 먹는다. 하지만 종이가방에 도시락을 갖고 다녔던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감사가 절로 나온다.
학교 식당이 없는 곳은 교실로 배식차가 와서 먹지만, 우리 학교는 급식실에 식당이 있어서 거기서 먹는다. 따뜻한 밥과 반찬, 국이 준비되어 있고, 조리사와 조리원들이 청결한 환경에서 좋은 식재료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나눠 준다. 추가 배식대에서는 더 먹고 싶은 음식을 더 먹을 수 있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는 영양 선생님이 미리 파악하고 다른 대체 식품을 제공한다.
게다가 학생들이 원하는 메뉴를 조사해서 식단에 넣기도 한다. 영양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희망 메뉴를 받으면 ‘햄버거, 피자, 마라탕’이 아주 인기다. 가끔 마라탕이 나오는데 나는 다 못 먹고 남긴다.
2학년 학생이 묻는다.
“어, 선생님, 왜 남겨요?”
“너무 매워서 못 먹겠네.”
2학년 학생이 거꾸로 나에게 묻는다. 매운 걸 잘 먹는 2학년 학생은 보란 듯이 급식 판을 들고나가 마라탕을 한 번 더 받아서 다가온다.
“선생님, 세 번째 먹는 애도 있어요.”
아, 나는 여태껏 매운 걸 잘 못 먹는 게 학교 급식을 오래 먹어서 ‘초딩 입맛’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나보다 매운 걸 더 잘 먹는 걸 보니 이제 나는 ‘유치원 입맛’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