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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Mar 15. 2024

교사는 아이를  믿어야지

첫 발령을 받은 것은 30여 년 전, 3월 중순이었다.  입학한 1학년 학생 수가 예상보다 많아, 한 학급이 늘어 중간 발령이 난 거라 나는 자연스럽게 1학년 담임교사가 되었다. 교실은 교장실 바로 옆이었다. 그때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오전반과 오후반을 했는데도, 학교에 빈 교실이 하나도 없어서 급하게 교장실을 반으로 나눠 1학년 교실로 만들었다.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 반을 내어주고, 방음도 안 된 시끄러운 일 학년 교실 옆에 계시면서도 늘 웃으셨다. 초임 교사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시며 “교장실에 놀러 오라.”라고 하셨다.    

  

요즘은 교실을 한 분 선생님이 온종일 쓰지만, 전에는 오전반 수업이 끝나자마자 오후반 수업을 해서 교사들은 서둘러 교실을 정리하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교무실에 있던 나는 교장 선생님이 놀러 오라는 말이 생각나서 교장실로 갔다. 교장 선생님은 음료수를 주시면서 학교는 어떻게 오느냐, 형제는 몇 명이냐를 물으셨다. 나는 남동생만 세 명이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버스가 늦게 오면 지각할 때도 있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은 전철로 오면 도착 시간이 정확하다고 알려주셨다. 다음날 나는 전철로 출근하다가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양복에 조끼까지 입은 교장 선생님은 전철 안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멋진 모습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정년퇴직을 앞둔 분이셨다. 흰 피부에 갈색 곱슬머리가  외할아버지와 비슷해 보였다. 나는 교장 선생님께 혈액형이 뭐냐고 물었다. 교장 선생님은 B형이라고 해서 나는 “B형이면 다가가기 힘들지만 친해지면 마음이 따뜻하고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알려 드렸다. 요즘 MBTI가 유행이듯 그때는 혈액형 성격이 유행이었는데 교장 선생님은 그걸 모르는 눈치였다.     

그 후 굳이 교장실에 놀러 가지 않아도 교실이 바로 교장실 옆이라 수시로 교장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반이 노래를 부르거나 활동을 하면 교장선생님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학교를 돌아다니셨다.   

   

한 번은 교장 선생님을 일 층 현관 앞에서 만났다. 우리 반 여자 아이가 실내화를 잃어버려서 찾으러 다닐 때였다. 여자아이는 새로 산 실내화를 짝꿍인 경수가 가져간 것 같다고 했다. 경수는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하면서, 화장실에서 언뜻 본 거 같다고 했다. 나는 경수와 같이 화장실에 가서 찾았는데, 없었다. 그러자 경수는 학교 앞 화단에서 본 거 같다고 해서 일 층까지 내려갔는데 거기도 없었다. 경수 말만 믿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슬슬 화가 나던 차에 교장 선생님을 만나자,  지원군을 만난 듯했다.   

  

나는 경수가 듣지 못하게 가까이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장 선생님, 저 녀석이 자기 여자 짝꿍을 좋아하는지 자꾸 귀찮게 하더니, 글쎄 오늘은 실내화를 숨겼나 봐요. 여자 짝꿍은 실내화를 잃어버렸다고 우는데 이 녀석은 화장실에서 본 거 같다, 이제는 화단 옆에서 본 거 같다고 해서 찾아봤는데 없어요. 어떻게 하죠?”
교장 선생님은 나와 경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물었다.

“아이는 뭐라고 하나?”

“자기는 안 가져갔대요.”

교장 선생님은 얼굴빛이 변한 나를 보며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교사는 아이를 믿어야지.”

나는 너무나 황당했다. 나를 두둔할 줄 알았던 교장 선생님이 나 대신 아이 편을 들어준 것 같아 서운함이 밀려왔다.      

나는 경수와 함께 교실로 올라오면서 아이의 말을 믿는다는 게 뭘지,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실내화를 찾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하긴 내가 내 눈으로 경수가 짝꿍 실내화를 감춘 걸 본 건 아니다. 짝꿍이 그런 거 같다고 말한 건데, 경수는 아니라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교실에 와보니 실내화를 잃어버린 여자아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여럿 남아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경수랑 여기저기 같이 찾았는데 못 찾았어. 어쩌지?”

그 말에 여자아이는 흑흑하며 소리 내어 울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새로 산 실내화를 잃어버리고 집에 가면 부모님께 혼이 났다.

그러자 교실에 남아있던 아이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들이 찾아보겠다고 씩씩하게 나갔다.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달래며 같이 있었다. 그런데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아이들이 우르르 돌아왔다. 화단 옆 큰 나무 뒤에서 찾았다는 거였다. 누가 찾았는지 묻지 않아도 아이들을 서로 자기가 찾았다고 큰소리를 쳤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교장 선생님 말은  내 마음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교사는 아이를 믿어야지.”

아이를 믿는다는 건,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거다. 아이를 믿는다는 것은 그 아이를 가르치는 나도 믿는 거다. 지금 아이가 어리고 부족해 보여도 그대로의 아이를 받아주는 거다.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분별 못 하는 것 같아도 그래도 아이를 믿는 거다. 교사인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닌지 분별 못 해 답답해도, 이대로 넘어가야 할지, 정확하게 따져서 밝혀야 할지 헷갈릴 때도 교사인 나를 믿어야 한다.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실내화를 찾기에 급급해서 아이를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나를 지적해 준 것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건 씨앗을 심는 거다. 작은 씨앗이 나중에 새싹이 돋고 잎이 나서 큰 나무로 자랄 것을 기대하는거다. 지금은 비록 눈에 보일락 말락 하는 작은 씨앗일지라도 그 안에 숨겨진 수많은 열매를 보는 거다.

     

씩씩거리며 실내화를 못 찾아 분통을 터뜨리는 어린 교사에게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훠이훠이. 가라앉히고, 숨 좀 쉬고. 아이를 한번 봐. 아이를 믿어 봐. 지금 이 모습 뒤에 숨어 있는 아이의 마음을 살펴봐. 나중에 멋지게 자랄 아이를 한번 상상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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