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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Jan 11. 2024

박수 연주가  

가끔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간다. 2023년에는 밤베르크 심포니, 미클로시 페리니&피닌 콜린스의 첼로와 피아노 공연, 루돌프 부흐빈더의 피아노 공연이 기억난다. 특히 2시간 동안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한 부흐빈더의 나이가 77세인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 나이에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부흐빈더를 보며 문득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7살,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 내 인생 처음 배운 악기가 피아노였다. 외할머니는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동네에 피아노 학원이 없다면서 집까지 오셔서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다. 엄한 피아노 선생님이던 외할머니는 손녀라고 하나도 봐주지 않았다. 악보를 못 보거나, 엉뚱한 건반을 누르면 실로폰 채로 내 머리를 때렸다. 피아노 배우는 걸 마냥 좋아했던 나는 첫 수업부터 피아노와 외할머니가 싫어졌다. 외할머니가 오시면 도망가고, 친구랑 놀면서 일부러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았다. 성실한 선생님이었던 외할머니는 다음날 버스를 타고 다시 우리 집에 오셨다.   

   

6학년, 서울에서 시골학교로 전학을 간 나는 억지로 배운 쥐꼬리 같던 피아노 실력으로  ‘피아노 치는 아이’가 되었다. 피아노 치는 아이가 없어 학교 합창단 반주를 하고, 중학교 예술제에서 선배와 듀엣곡을 연주했고, 거창고를 다닐 때는 반별 합창제 반주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주일이면 교회 오르간 반주를 하고, 음악공연을 들으면 가슴이 따끈따끈해진다.   

    

새해 초, 2024 신년 음악회 필하모닉 앙상블 공연을 예매했다. 공연 며칠 전, 플르트 연주자가 코로나-19 감염으로 교체되었으니 취소 및 환불은 고객센터에서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도 코로나19 감염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구나, 플르트 연주자가 교체되어 취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공연 당일, 연주자 13인이 입장할 때 관객들이 엄청나게 환호하며 손뼉을 크게 쳤다. 요새 본 공연 중 가장 큰 박수와 환호였다. 빈필하모닉 멤버인 13인은 모두 남성으로 백발이 많았다. 지휘자 대신 바이올린 연주자의 주도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폴카를 연주했다.    

 

내 옆 좌석에는 젊은 아빠와 초등학생 아들이 앉았다. 아들은 오기 싫은 걸 왔는지 공연이 시작되자 졸았다. 아빠가 툭 치자 일어나긴 했지만, 졸음을 참지 못하는 거 같았다.     

‘숲 속에서’라는 폴카 곡을 연주할 때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는 악기가 나왔다. 퍼커션(타악기) 연주자가 3도 음, ‘미와 도’ ‘뻐꾸기 휘슬’ 반복하자 아이는 신기한 듯 발장단을 치기도 했다. 새가 지저귀는, 날아갈 듯 가벼운 소리를 ‘꾀꼬리 버트 휘슬’로 연주하자 아이는 “와!” 낮은 소리로 감동했다.      

그러다 ‘피치카토 폴카’를 연주하자 아이는 웃음을 못 참고 피식 웃었다. 피치카토는 현악기의 현을 손끝으로 튕겨서 연주하는 주법인데 그걸 연주하는 연주자의 모습이 재미있었나 보다. 아이는 좌석 앞으로 바짝 당겨 앉으며 “히히” 웃었다.


필하모닉 앙상블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 서곡을 시작으로 11곡을 연주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고, 13명 연주가는 모두 다 같이 일어나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곡이 다 끝나자,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앙코르, 앙코르” 외쳤고, 마지막 앙코르곡은 “라데츠키 행진곡”이었다.      

빈에서 매년 하는 신년 음악회, 빈필하모닉 연주공연처럼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 관객들을 박수 연주자로 초대했다. 나는 빈 관객들이 수준이 높아 강약을 살리면서 정확한 박자로 손뼉을 치는가 싶었었다. 그 비밀은 박수 지휘자였다. 제일 가운데 앉은 연주자가 여리게 하는 부분은 작게, 세게 하는 부분은 크게 박수하는 동작을 했다. 멈출 때는 두 손으로 엑스자로 표시했다. 관객들은 박수지휘자의 동작을 따라 작게 치다가 크게 치다가 ‘딱’ 멈췄다. 나도 옆에 앉은 초등학생 아이도 빈 관객만큼 박수 연주를 아주 훌륭하게 잘 해내었다.    

 

희망찬 2024 새해가 될 수 있도록 박수 연주 기회를 준 빈필하모닉 앙상블 연주가들에게 감사,

잊지 않고 클래식 공연에 오는 나에게 감사,

도망 다니던 손녀에게 끝까지 피아노를 가르쳐 준 외할머니에게 무지무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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