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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Dec 30. 2023

산타 도그

딸은 결혼하자마자 엄마가 되었다. 사위가 결혼 전부터 기르던 개, 마루의 엄마가 된 거다. 한 번도 개를 키운 적 없던 딸은 처음 마루를 만났을 때 늑대를 본 적처럼 깜짝 놀랐다. 마루는 20kg나 되는 보더콜리로 진한 잿빛과 흰색 털에 눈빛이 날카로웠다. 마루는 딸을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지만 딸은 남의 개처럼 무서워했다.

딸은 마루를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에게 보내려고 했다. 마당도 넓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어서 마루에게도 좁은 신혼집보다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부모님이  사는 동네에서는 마당에서 기르는 개들이 자꾸 사라진다고 했다. 딸은 마음을 바꿔 마루를 우리 집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나는 마루만 오면 입과 코가 가렵고 목이 부었다. 결국 딸은 자기 집 현관에 마루의 집을 마련하고는 의붓자식처럼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일 년이 지나자 딸이 달라졌다. 슬슬 마루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보면 은근 자랑이었다. 마루는 훈련이 잘되어 절대 집안에서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 먹으라고 바닥에 주는 게 아니면 아무리 맛있는 게 있어도 입에 대지도 않는다. 기다리라면 얼마든지 그 자리에서 기다릴 줄 안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던 딸은 수시로 산책하며 마루 털을 빗어주었다. 더러운 걸 절대 만지지 않던 딸은 마루가 똥을 싸면 누가 볼세라 얼른 비닐에 싸서 들고 왔다.


삼 년이 지났을 때, 마루가 갑자기 피를 흘렸다. 병원에 갔더니 ‘면역매개성 용혈성 빈혈’이라고 했다. 자가 면역체계의 문제로 자신의 적혈구를 외부 물질로 인식한다는 거다. 그 뒤로 마루는 딸의 0순위가 되었다. 어느새 마루의 집은 현관에서 거실 가장 넓은 곳으로 바뀌었다. 아침이면 마루는 안방까지 달려가서 딸을 깨웠다. 깔끔한 척하던 딸은 털 뭉치를 날리는 마루와 같은 방에서 자기도 하고, 옆에 끼고 앉아서 쓰다듬기도 했다.


빠듯한 신혼살림을 쪼개어 매달 치료비, 유기농 사료와 간식을 먹였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개전용 수영장과 스파에 데리고 다녔다. 보더콜리는 양치기 개로 산을 좋아한다며 ‘산타 도그(산을 타는 개)’활동을 하러 강원도까지 갔다. ‘산타 도그’는 몸에 씨앗주머니를 차고 산불 피해를 입은 산을 타면서 씨를 뿌리는 개를 말한다. 마루가 얼마나 열심히 산을 뛰어다녔는지 신문에도 났다며 딸은 자식 자랑을 하듯 마루의 사진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 뒤로 딸은 마루 생일이면  케이크를 사서 축하해 주었다. 더 상태가 나빠지거나 갑자기 이별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딸의 눈은 그렁그렁했다. 우리 집에 올 때도 마루랑 같이 와서 함께 산책을 하고, 집 주변 놀이터를 돌기도 했다. 시간이 될 때 같이 있고 싶다고 했다.

올 9월, 마루가 쓰러졌다. 병이 재발한 것이다. 20kg 거구, 축 늘어진 마루를 딸이 혼자 들고는 엉엉 울면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마루는 수혈을 해야 했는데, 몸무게가 많이 나가 굉장히 많은 피가 필요했다. 다행히 전문 병원이라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며칠 후 퇴원했지만 딸은 그때부터 고생이었다.  

“엄마, 건강할 때는 밖에서 대소변 보는 마루가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 밤낮 3시간이면 밖에 나가야 해.”

딸은 밤에 기저귀를 채웠는데 마루는 소변을 보지 않으려고 물을 먹지 않아 염증 치수가 치솟았다. 일주일 간 실랑이를 하다 결국 마루가 이겼다. 기저귀 대신 환할 때는 딸이, 어두울 때는 사위가 번갈아 마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내가 걱정을 하자, 딸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당연하지. 마루는 가족이잖아.”

강원도 산을 훨훨 날아다니던 마루가 요즘은 걷다가 쓰러지기도 한다. 얼마 후에는 누워만 있을 수도 있다.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함께 반려견과 사는 가족이 12%란다. 딸은 12% 안에 들 것 같다. 딸은 마루를 돌보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다. 나는 마루가 딸의 돈과 마음과 시간을 빼앗는 걱정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마루는 딸이 성숙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문이었다.

큰 병원을 다니던 딸이 요즘 작은 동네 병원을 마루의 병원으로 정했다. 마지막까지 평안하게 마루를 치료해 줄 수 있는 곳이란다. 아프거나 늙거나 변함없이 곁을 지켜주는 거 그게 산타 도그, 마루에게 가장 큰 사랑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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