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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Dec 14. 2023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빛난다.

오랜만에 강당에서 예술 한마당을 했다. 아이들은 관객이 되기도, 출연자로 무대에 서기도 하면서 신나 하다가 긴장하기도 했다. 저학년 아이들은 반 아이들이 같이 하는 발표가 많았다. ‘넌 할 수 있어’ 노래하면서 율동을 하고, 칼림바 연주와 ‘아름다운 세상’을 수화로 했다. 


‘좀비의 세계’라는 연극도 있었다. 아나운서가 좀비가 나타났다는 뉴스를 전하면서 시작되는 연극이었는데 사람들이 좀비에게 물려 모두 좀비로 변했다. 아나운서까지 좀비가 됐는데 과학자가 물약을 개발해서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내용이었다. 반 전체가 같이 참여했는데, 배우는 물론 대본과 무대소품까지 2학년 아이들이 모두 직접 다 했다니 진정한 예술가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혼자 나와서 발표하기도 했다. 지호는 노래를 잘하니까 당연히 노래를 부를 줄 알았는데 자기가 개발한 춤을 추겠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당황해서 물었다. 

“아니, 무슨 춤?”

“그냥 춤이요.”

무대에 올라온 지호는 음악이 나오자마자 10배속 비디오를 튼 것처럼 빠르게 온몸을 흔들어대며 춤을 추었다. 지호 말대로 딱 그냥 춤이었다. 몸과 손과 발이 각각 따로따로 움직이는 요상한 춤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이돌가수와 같은 음악에, 똑같은 춤동작을 따라 했는데 지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게 은근 매력이 있어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더 재미있는 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거 같지만 10배속처럼 빠르게 추다, 5배속, 0.5배속으로 느리게 추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듯 10배속으로 올리면 전혀 다른 춤이 되는 거였다. 큰 웃음을 주는 지호를 보며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빛나는 걸 보았다. 

하고 싶은 걸 해도 부끄러울 때가 있다. 6학년 두 남학생은 릴러 말즈의 ‘트립’을 불렀다. 인기 있는 최신곡이라 굳이 그 곡을 하겠다고 했는데 시작하는 첫 소절을 놓쳤다. 더 큰 박수를 받고 두 번째 도전 끝에 겨우 들어가긴 했는데 부르는 게 반, 안 부르는 게 반이었다. 떼창을 하거나, 합창단이 하는 파트를 둘 다 안 하고 뻘쭘하게 있었다. 그러다가 어색한지, 분위기를 띄우려고 “아~~~ 악!, 웩!”소리를 질러대다 정작 노래나 랩을 할 때는 낮은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용기 있게 도전해도 처음에는 실수할 때가 많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를 받기는 했지만 두 남학생은 스스로 부족하게 느꼈는지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놉!” 아이들은 더 이상 기회를 주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계속해 달라고 한 건 ‘사람 들기’였다. 5학년 남학생이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크고 뚱뚱한 아이를 가볍게 드는 거였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를 시켜달라고 손을 들다가, 나중에는 아이들로만 성이 차지 않았는지 “선생님도!”를 외쳤다. 5학년 남학생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큰 선생님을 무대로 초청했다. 아이들은 설마 하며 쳐다봤는데 남학생은 아무 도움 없이 키 큰 선생님을 번쩍 들어서 자기 어깨에 걸쳐 메고는 무대를 한 바퀴 돌았다. 아이들은 자란다. 자라고 또 자라서 친구와 선생님, 부모님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 빛났던 참신한 무대는 픽토그램이었다. 픽토그램이란 픽처(그림)와 그램(문자, 도해)의 합성어로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조합한 그림을 가리킨다. 남학생 2명이 암막천을 친 무대에서 올림픽 종목을 표현하는데 관객석의 아이들은 “권투, 양궁, 다이빙, 골프…….” 척척 알아맞혔다. 아이들의 아이디어와 표현력이 얼마나 섬세한지, 이런 예술가다운 감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교실이나 학교 강당에서 펼치는 무대는 작지만 크고, 소박하지만 멋지다. 아이들은 이런 무대를 통해 우리나라와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가의 꿈을 키워간다.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다 개그맨이 되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다 가수가 되기도 한다. 작고 소박해 보이지만 소중한 기회를 주는 곳이다. 20여 년 전 학교 교실에서 발레복을 입고 반 아이들 앞에서 발레를 했던 여학생은 지금 ‘에뚜알’ 수석 무용수가 되어 전 세계인에게 새처럼 아름다운 춤을 선물하고 있다. 학교 합창제에서 노래를 했던 남학생은 뮤지컬 무대의 주인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잘 부르는 노래대신 그냥 춤을 추고 싶었던 지호,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빛나는 무대를 마친 후에 담임 선생님께 달려와서 말했다. 

“선생님, 저 이제 다른 춤도 만들 거예요. 그리고 다음에는 노래도 부르면서 춤을 출래요.”

제2의 BTS나 샤이니 태민 같은 훌륭한 댄스 가수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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