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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pr 16. 2024

예나 지금이나 입학식은 설렌다.

# 1970년대 서울 변두리 초등학교 입학식     


3월인데도 꽃샘추위로 바람이 매서웠다. 운동장에 방풍 나무처럼 둘러선 학부모들.

입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이 들고 있는 팻말 뒤로 서 있었다. 한 반에 70~80명씩 10반이 넘었다. 일 학년 학생들과 부모님이 같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운동장밖에 없었다.

추워서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내 옆 남자아이는 코를 킁킁거렸는데 그때마다 콧물이 입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갔다.     

                                                                                              

(중앙일보 신문기사 인용)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은 들어도 들어도 끝나지 않았다.

흥부의 복바가지 열리듯 학교를 향해 품었던 나의 환상은 슬슬 금이 가기 시작했다.      


환상은 ‘취학통지서’를 받은 날 시작되었다. 이웃집 아줌마와 친척들이 “드디어 너도 학교에 가는구나.” 축하하며 선물을 줬다. 엄마는 학교 가는 나를 위해 빨간 책가방과 새 옷을 사 줬다. 유치원도 안 다녔던 나는 ‘합격통지서’를 받은 것처럼 우쭐했다.     


학교에 가기 전부터 이런 좋은 일이 생기다니! 나는 기대감으로 불타올랐다. 게다가 집에서 같이 놀던 연년생 남동생은 왜 누나만 학교에 가냐고 안달했다. 그건 새 옷과 새 가방 때문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보란 듯이 더 자랑하며 학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입학식 날 아침, 엄마는 새 옷에다 흰 손수건을 달아주었다. 이제부터 코가 나오면 소매에 닦지 말고 손수건에다 닦으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름표까지 같이 달아줘서 손수건에 코를 풀 수 없었다.

      

학교는 꼭 ‘흰 손수건’ 같았다. 보기에 좋고 깔끔했지만, 마음 편하게 쓸 수 없었다. 학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었다. 1학년답게 지켜야 할 질서와 규칙을 배웠고, 반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동생들과 다르게 친구들은 까다롭고 잘 삐지고 변덕스러웠다.     

 


# 2024 경기도 초등학교 입학식     


학교마다 다목적실과 시청각실, 전교생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체육관이 있다. 우리 학교 입학식은 체육관에서 했는데 입학생은 26명이다. 한 반 기준이 26명이라 1명만 더 와도 2 학급이 될 수 있는데 무척 아쉬웠다. 1학년 담임교사는 옆 반 없는 유일한 1학년 1반 담임선생님이 되었다.      

입학식을 하기 전부터 담임선생님은 학생들 이름을 다 외웠다. 아이들에게 입학 축하 편지도 쓰고 아이들 이름표와 선물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입학식 날, 4학년 선배들이 먼저 체육관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들은 입학생들이 입장할 때 꽃다발을 주며 축하해 주었다. 입학생들은 부모님과 나란히 의자에 앉아서 입학식에 참석했다. 따뜻하게 난방을 한 입학식장이라 아이들은 두꺼운 코트를 벗었다.       


학교를 소개하는 동영상과 선배들의 축하 영상을 보여 주었다. 교장 선생님은 “너희들이 학교의 주인공이란다. 소중하고 특별하고 멋진 사람이야.”라며 짧게 축하 인사를 했다. 입학생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며 강단 위에서 입학 선물을 나눠 주었다. 부모님들은 그런 자녀들의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입학생들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소중한 존재이다. 집안에서 외동, 일가친척 중 유일한 어린이인 경우도 꽤 있다. 어릴 적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면서 한글과 영어도 공부했다. 유치원 다닐 때 초등학교 방문을 하고, 학교가 어떤 곳인지 미리 공부도 했다. 학교에 대해 환상을 가질 틈이 없는 세련된 학생들처럼 보인다.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난다고 설렜고, 잠도 설쳤다고 말했다. 학교는 여전히 새 출발 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곳이고,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함께 공부하는 곳이다.       


# 앞으로 입학생들은?     


1960년대에는 한 해에 100만 명 이상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교실이 부족해서 1~2학년 때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교대로 수업했고, 어떤 학교는 3~4학년까지 했다. 그래도 학생 수가 많아, 한 반에 70~80명이 같이 공부했다.      


2004년에는 65.7만 명이 입학했는데 20년 후인 2024년은 처음으로 40만 명 이하로 줄어서 36.9만 명이 입학했다. 2017년부터 출산율이 0.7%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입학생이 한 명도 없어 입학식을 못 한 학교가 올해만 전국적으로 157개교나 된다.      

대구에서 나 홀로 입학식을 한 A 학생은 담임선생님과 일대일 수업을 한다. 입학 소감을 묻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해서 너무 설렜다. 친구가 없어서 아쉽지만, 언니 오빠들과 잘 놀며 학교생활을 잘하고 싶다.” 하고 말했다. 하지만 A 학생의 부모님 마음은 달랐다. “우리 애가 혼자 입학하게 돼 걱정됐다. 아무래도 친구들과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돼 다른 학교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했다.     

입학생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가슴에  흰 손수건을 달진 않았지만, 요즘 입학생들도 학교가 불편하고 어색하다. 가정에서 부모님께 사랑받던 아들딸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 부모는 내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때만큼, 아니 더 학교생활을 잘하길 바란다.


아이들도 그러고 싶다.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공부하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노력’ 한다.      


학교는 교과서로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을 배우고, 그네와 시소를 공평하게 타는 걸 배워간다. 그렇게 학교에서 설레는 마음, 떨리는 마음, 복잡한 마음으로 같이 놀면서 같이 자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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