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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Nov 21. 2021

각자의 설국열차

두 번째 만남

첫 만남의 의욕과 달리 각자의 인생에서 이 프로젝트가 1순위가 아니다 보니 

매거진에 매주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수많은 외부 요인들로 인해서 

순쉽간에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지난번 업로드 이후 흘러가는 날짜나 세며 글을 쓰지 못해 초조해했다. 

모든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낼 수 없기에 과정의 더딤을 인정하거나 

이 프로젝트를 1순위로 옮겨 우선적으로 처리하면 될 텐데 그러진 못했다. 


타인의 강요가 지겹다고 말해놓고선 

정작 무한 자유가 주어지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다니...

인간이 명분에 목숨을 걸고, 돈에 의해 움직이는 건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뭐라도 쓰면 먼지라도 쌓이는 걸 경험하며,  

'영화와의 이별'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북으로도 만들었다. 

브런치 북 응모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 먼지라도 뭉쳐서 굴려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처음 시작 글을 두 달 동안 못 써서 끙끙거렸던 기록을 보니 애처로웠다. 


지루함과 자기 효능감의 상실은 과정의 일부임을 알지만 매번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거창하게 몸살을 앓으며 의미를 찾지 못해 안달 내는 나는 어쩌면 이토록 한결같을까?

이걸 알면서도 뭘 대단한 걸 한다고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늘 뒷걸음질을 치며 덜덜 떨기 일쑤다. 


영화인 Y 에게 어차피 평생 고민은 끝나지 않고, 그 고민을 고민한다고 쓰면 된다고 쉽게 말해왔지만 

정작 나는 두 번째 만남 이후에 3주 동안 고민만 하다가 

이제야 고민 중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떠안고 내보이려니 참 머쓱하다.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지인에게도 나의 강점이 성실함이라고 말했는데 성실한 건 뻔뻔함 뿐이었다. 


그날은 입봉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인 Y의 남편도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며 술도 차도 아닌 물을 2L 넘게 마셔대며 마음껏 지껄였고, 

낯가림이 심한 '주스(영화인 Y의 반려 고양이)'도 곁을 내주며 다가오는 통에 

마음속 빗장을 멋대로 풀어버렸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판단할 거라는 의심 없이 하는 대화는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 

새벽 1시를 지나 시간을 확인하고 흠칫 놀라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라는 뻔한 말을 내뱉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행복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라이터스 블록을 모르겠다며 뻔뻔하게 글을 써내던 단순함을 잃어버렸다. 


내가 혐오하며 걷어찬 자리는 누군가는 간절하게 원하는 자리다.

제 풀에 지쳐 포기하며 물러나는 주제에 애써 명분을 찾으며 잔다르크라도 될 것처럼 행동했다. 

시스템을 탈출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동력이 되기보다는 

그 속에 남아서 제대로 바꿔보겠다고 애쓰는 모든 이를 비웃는 걸로 자주 대체되었다. 

내 선택의 간결함과 옳음에 취해 타인의 노력을 함부로 의미 없다 치부해버렸지만 

사실 겁에 질린 개가 더 크게 짖는 격이었다. 

나는 이 과정을 질리지도 않고 몇 달째 반복을 하며 

나의 비루함과 시시함을 끝도 없이 확인을 하면서도 

함부로 겸손해지지도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일관성을 왜 이런 곳에서 발휘를 하는 건지..


누군가는 정말로 열차의 머리칸에 올라가 열차를 멈출 수도 있다. 

나의 나약함 때문에 휘둘리고 실패한 걸 타인도 못할 거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오만했다. 

완벽하게 옳거나 완벽하게 틀린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나의 편협한 시각을 확인받고 놀라는 내 모습이 영화인 Y의 남편의 말처럼 순수하기까지 하다. 

똥밭에 굴러서 같이 똥이 묻는다고 이루어낸 일까지 없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 똥이 조금 묻었다고 몸서리를 쳐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매번 내린다. 

어쩌면 그게 가장 쉬운 선택이기 때문에 택한 걸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나의 마음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기에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며 무언가 하지도 않고 된 것처럼 착각을 한다. 

그건 말 그대로 착각이라 그 실체를 스스로 눈치채며 번번이 무너진다. 


맑고 잔잔한 물을 향한 욕망과 거대한 파도를 타겠다는 욕망의 우의를 누가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날 각자의 길을 마음으로 응원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오늘에서야 그 말을 조금은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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