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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지서강 Feb 08. 2021

두 얼굴의 거짓말:
아파트 01

 재건축 워리어로 거듭나기 - 도논

 어느 날 아파트 단지 가로수길에 아주 커다란 현수막이 붙었다. 선거철 정치인의 호소 목적 혹은 지역구 내 쓰레기 처리장 설치 반대 목적이 아니고서야 현수막에서 그렇게 감정적인 문구를 보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현수막은 <목동 13단지 재건축 준비위원회 출범! 조금 늦었지만 확실하게! 명품 13단지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적혔다'가 아닌 '말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정말로 그 현수막이 내게 뭐라 말을 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등교를 할 때, 아르바이트를 갈 때, 단지 내 곳곳에 붙은 그 현수막을 확인하며 나는 뭔가 잔뜩 흥분한 낯선 사람과 억지로 한 방에 갇혀있는 것 같은 민망함을 느끼곤 했다. 알바 장소였던 1단지 편의점으로 향하다 보면 거기엔 벌써 <축 목동 1단지 재건축 추진위원회 출범!> 이라는(추진은 준비와 급이 다르다고!) 현수막이 예쁜 벚나무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걸려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한 발 앞서서 무언가를 진행하고 있구나, 우리 단지도 분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자연스레 하기도 했다. 어쨌든 현수막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라며 무언가를 외쳤고, 13단지가 중요한 운명공동체 집단으로 묶여있음을 암묵적으로 알려줬다. 


 목표로 둔다는 ‘명품’ 단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은 다음 일이었다. 13단지 사람들이 그 명품단지 만들기 과업에 성실히 골몰해야 할 사회문화적, 혹은 좀 오버하자면 역사적 배경 같은 것도 그때 처음 확인해보았다. 목동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 초 명품 단지들의 모양을 생각해봤을 때, 명품 단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배타성이었다. 입주민들에게만 허락된 쾌적한 공원, 삼엄한 경비, 브랜드 이름이 적힌 출입카드. 안전 명목이지만 그 내밀한 영역에는 끊임없이 안과 밖을 구분 짓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몇몇 조잡한 상징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배타성의 정점은 당연하게도 집값이다. 삶의 궤적 어딘가에서 한 번 삐끗해 타워팰리스로 옮겨가지 못한 사람들의 역사가 이 곳에 서려 있다. 짐짓 안정된 일상을 영위하는 듯 보이지만 가슴 한 켠에 늘 그에 대한 울분과 각자의 타워팰리스 진입 실패기가 하나씩 있는 사람들. 이 단지의 굉장히(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어른들이 그런 역사와 그에 따른 만성 신경질증 및 불안감을 지닌 채 산다. 이들에게 재건축은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으로 배타적 지위를 이룩할 생의 거의 마지막 기회다. 우리 집 역사도 똑같다. 특이사항이라면 그로 인해 발생한 재건축에의 과업이 부동산 무식자인 나에게 당분간 집중된다는 점 정도. 그나마 (지식) 사정이 나은 오빠는 군대에 가 있고, 경제적으로 주 보호자였던 아버지는 건강 관리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 돈 쓸 일만 남은 우리 남매의 미래를 생각해 봤을 때, 재건축으로 오를 집값은 유일한 안정성을 약속하는 듯 하다. 그러한 기대감을 몰래 몰래 쌓아두고 준비하는 게 가장의 역할이라면, 나는 지금 가장이다. 

 재건축준비위원회는 우리의 첫 번째 집단의식을 공고히 할 설명회를 열었다. 구청장과 구의원들이 그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 내겐 놀랍고 또 진부했다. 당연하게도 재건축 이슈는 정치적 이슈이기도 했다. 정치인의 축사(아직 발도 못 뗀 사업인데 뭘 축하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를 시작으로 많은 것들이 ‘설명’되었다. 알고 보니 올해 초 양천구도 아닌 강서구 구민회관에서 <목동 아파트 현재와 미래 비전 준비 설명회>라는 이름으로 이미 모든 단지를 아우르는 설명회가 한 번 열렸고, 그 이후 각 단지별 설명회를 거쳐 13단지가 (조금 늦게) 바통을 넘겨받은 것이었다. 

그림 1. 목동 재건축 현재와 미래 비전 설명회

용적률, 평당가, 사업비, 긴밀히 얽혀 있는 정부 정책들까지.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이 지나가는 와중에 ‘보통 20년 잡고 본다’는 설명이 스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기절할 뻔했다!! 20년 뒤를 내다 보고 모인 사람들이었어? 세상에 이보다 더 숭고한 상호 신뢰 기반 연대체는 없을 거야…. (그때까지 이들 중 얼마나 살아있을까라는 다소 못된 생각은 별 의미가 없다. 집은 영구하다.) 결국엔 20년의 시간을 끈기 있게 지탱할 만큼의 공통된 욕망이 서로에게 있음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안심시키는 것이 이 설명회의 궁극적인 기능인 듯 했다. 

그림 2. 네이버 카페 '부동산 스터디' 캡처

 그날 저녁 엄청난 회원 수를 자랑하는 네이버 카페 '부동산 스터디'에 가입해봤다. 갈피를 잡기 위해 카페를 들락거리며 ‘내가 이들의 똑부러진 욕망을 따라잡지 못하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두려움도 느꼈다. 정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눈팅밖에 할 수 없었다. 13단지를 검색하니 역시나 방구석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대충 읽다 보니 여기서도 세력 싸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재건축 바람이 부는 대표적인 지역구들 간 상호 견제가 살벌했다. “00님 몇 달 전부터 계속 헛바람 드셔서 선동 글 올리시는데 그만 좀 하시죠^^ 백날 예측 글 올려보세요 30년 지나도 거기가 재건축 되나” 등의 댓글을 볼 때면 왜 부동산 이슈에 세 몰이가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건지 좀 알 것 같았다. 우리 단지 재건축에 초 치는 고닉 한 명이 있었는데 굉장히 꼴 보기 싫었다. 나는 이 어그로들과 싸우는 13단지의 용사들을 열렬히 (정회원 아니어서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안전진단 모금에 스퍼트를 올리자는 현수막이 새로 걸렸다. 이번에는 동 별로 목표액의 몇 퍼센트까지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종이가 각 승강기에도 함께 붙었다. 우리 동은 중간과 꼴찌 사이 정도였다. (나는 돈을 한 푼도 안 냈지만) 괜히 조급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재건축 전 필수 절차인 안전진단이란 결국 ‘우리 아파트가 얼마나 살만한 곳이 못 되는지’ 증명하기 위한 사전 절차이다. 단지 내 주민들이 50만원 단위로 십시일반한 모금액이 모여 몇 억원이 되면 비로소 진단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다. 높은 인구 밀집도 때문에 지상 주차장이 가끔 아비규환에 빠지기도 하고 겉모습 역시 그리 세련되지 못하긴 하지만 결코 지역구를 갈아 엎을 정도로 붕괴 직전은 아닌 목동의 이 아파트 단지들이, 어떻게 정밀 안전진단에 통과할 수 있을까? 아무도 말해주진 않지만 거기엔 수없이 많은 합의와 대화, 뭐 그런 어른들의 내밀한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어떤 욕망은 과장된 결핍 표출을 통해 달성되기도 하며, 그를 위해선 많은 사람들의 성실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지 내에는 ‘한달 만에 3억 모금 달성!’ 축하 현수막이 붙었다. 8월 19일 정밀안전진단 신청을 완료했다고 한다. 짝짝짝. 

그림 3. 한 달 만에 안전진단 접수 완료!

 재건축된 아파트 단지 구성원으로서의 모습이 더 구체적으로 상상되기 시작한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조합장 말에 따르면 일단 섬뜩하게도 난 40대 중반이겠지… 그땐 이 문제가 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더 자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정신을 차려서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 있을 수도 있다. 하여튼 아파트가 재건축되어 출입문에 비밀번호가 걸리고(세련된 카드가 하나씩 생길지도 모를 일), 우리만의 더 넓은 공원이 생기고, 합심하여 20년의 세월을 견딘 이들끼리의 연대의식이 안정을 찾을 때쯤이면, 주민들이 에어컨 설치를 반대해 여름 내 찜통 같았던 경비실 환경도 조금 더 나아질까. 재건축 성공으로 집값이 오르고 그렇게 우리 13단지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자본을 확보하게 되면 수년 전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던 지역구 내 행복주택 건립 계획도 다시 시도될 수 있을까. 13단지 주민들이 살던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꿈 같은 이야기다. 재건축에의 연대감은 그런 대의적 연대감과 결이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안다. 알면서도 구태여 이런 집단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고(물론 그럴 힘 조금도 없음), 혼자 이들을 몰래 응원하는 나의 모습을 누구에게 변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별 짓을 다하네’라는 표면적 인상 속에는 ‘나 대신 별 짓 다 해줘서 조금 고맙다’라는 본심이 깃들어 있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행운이 찾아 왔으면 좋겠고, 그런 수동성이 이 부동산을 둘러싼 가해 구조를 지탱하고 있음을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수 없다면 모든 재건축 시장이 망해버리길 바란다. (어차피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명품 단지 주거권을 얻게 된 이들(혹은 그 자식들)이 무던한 얼굴로 출입증을 찍고 단지 주민과 밝게 인사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20년을 내다보고 고생스레 연대한 보상으로 얻은 묘한 안도감 속에서, 우리는 그 단단하고도 느슨한 집단의식을 대물려줄 것이다. 가능하다면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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