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니엘, 팜지
수다 떤 사람들 소개
다니엘 호리스: 틴더를 6-8개월 정도 사용했고 3-4 명 정도를 만났다. 좋아하는 것은 자연.
팜므파탈지망생: 처음엔 틴더에 엄청난 거부감을 느꼈으나,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호기심천국 시기를 거쳐 틴더에 가입, 두 세 명과 채팅을 해보았다.
‘인만추[1]’의 성지, 틴더는 더 이상 음지의 데이팅 앱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가벼운 틴더 체험 영상이나 블로그에 올라온 후기들은 꽤 많고, 체험기를 기사화한 글도 여러 편이다. 이런 기사들은 독자를 남성으로 설정해놓고 어떻게 틴더 혹은 데이팅 앱을 활용해야 잘 매치가 되는지 조언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 진지한 여성들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성들이 쓴 섹스 칼럼이나 기사, 잡지에 나온 섹스토크, 영상,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써진 섹스에 관한 책들도 보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각보다 금방 바닥났다. 조언도 가벼운 후기도 아닌,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즐겁고도 진지한 말하기는 왜 이렇게 적은 것일까? 거기다가 지금 막 온라인 데이트를 시작한 사람들의 그러한 경험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껏 찾아도 너무 오래되었거나, 갈대 같던 시기를 극복한 튼튼한 마음의 소유자가 몇 자 적은 해탈의 기록이거나, 틴더에 몸담았던 그 때를 아련히 회상하며 “그래서 결국 틴더 지웠다!”로 끝나는 글들이었다. 아니, 그러면 이제 막 눈뜬(?)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진지한 여성들은 답답했다. 그래서 우리가 부딪히면서 직접 써보았다. 부지런한 틴더 유저 다니엘 호리스(이하 다니엘)와 몸이 머리를 못 따라가는 페미니스트 유교걸 팜므파탈지망생(이하 팜지)이 함께 하는 진지한 틴더 체험기와 섹슈얼리티 톡!
Part 1. 틴더 속의 나
Q1. 너는 왜 틴더를 시작하게 되었어?
다니엘: 알게 된 건 교환학생 갔을 때 주변 친구들이 써서였고, 온라인 데이트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 그런데 문화교환 하면서 타이 복싱을 하고 맨날 한 시간씩 뛰고 수영하는 건강한 여성 친구를 만났는데 얘가 나한테 틴더를 처음 보여줬어. 그래서 ‘아 엄청 이상한 사람들만 있지는 않겠구나’ 했어. 틴더를 까는 행위에 대해 나 자신을 이성적으로 설득한 계기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고, 사실 나의 33번째 자아는 온라인 데이트나 FWB가 너무너무 궁금했다.
팜지: 사실 지금껏 그런 데이팅 어플 광고가 SNS상에 뜰 때 내 감정은 ‘극혐! 저기서 어떻게 사람을 만나!’ 였는데, 생각보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은 하나의 창구 정도로 틴더를 소개해주길래 ‘아하 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선택지구나’ 싶어서 한 번 깔아봤지. 나한테도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망은 있으니까. 그런데 역시나 지식이 늘어난다고 해서, 머리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모든 걸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 ^^.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난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명쾌하게 잘 드러내질 못하는 것 같아. 틴더 같은 데에선 그게 필요하잖아. 날 깊이 있게 알려주기 전에 그냥 사진과 소개 몇 줄 만으로 일단 좀 알려야 하는데. 난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의심도 있는 거지. 기껏해야 서강대학교 스물 세 살, 사진 몇 장. 그러니까 이상한 놈들만 다가오지 샹.
Q2. 틴더를 하면서 뭔가 자기검열 하게 되는 기분, 혹은 내가 설정한 이상적 자아를 배반하는 기분을 느꼈다면 그건 언제였어?
다니엘: 처음엔 얼굴 한가운데에 NOPE이라는 도장을 찍히게 하는 게 되게 찔렸어. 아니 그래도 사람 얼굴에 그런 걸 그르냐? 근데 또 내 마음은 정당화를 되게 잘해. 익숙해지니 큰 문제는 아니었고, 그 뒤로는 일상에도 그 도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리고 성적인 자기검열. 이걸 한다는 것만으로도 ‘잘 주는 애(?)’ 처럼 보일 수 있다는 불안과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그럴 땐 좋아하는 당돌한 여성 캐릭터들을 생각하면서 극복했어.
팜지: 난 좀 슬픈 건데, 페미니스트라고 쓸까 말까 고민했다는 거. 오히려 현실에서의 나에게 페미니스트 선언은 거의 1단계 필수 거름망 역할을 하잖아. 그리고 그건 십중팔구 긍정적인 기능이고.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곳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쓰면, 그로 인해 걸러질 인간들이 일종의 자원처럼 느껴지고 그게 아까운 거야(ㅋㅋㅋ). 그리고 채팅으로 욕 먹을까봐 무서운 것도 좀 있었고. 여튼 되게 모순적이었어. 그러나 이건 본격적인 매칭 전 가입 단계에서만 느꼈던 감정이고, 거기 어떤 남자들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는 프로필에 무시무시한 말들 적어놨어.
Q3. 틴더가 네게 주지만 일상생활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은 뭐야? 익명성? 우연함? 해방감?
다니엘: (음..) 설렘. 내가 배경 등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잘 맞아서 내 인생이 변화할 것 같다는 되게 바보 같고 낭만적인 생각! 여기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거라는 희망이 넘쳐서 첨엔 되게 오버했어. 길게 메시지 보내고... 그치만 부질없다는 걸 곧 깨달았지. 그런 희망을 아예 버린 건 아닌데 한 0.0001% 정도로 줄였어(슬픔). 그리고 해방감도 있지. 밤에 늦게 다니면 안 되니까 당연히 이런 것도 하면 안 되는데 난 하고 있는 거지! ㅎㅎ!
팜지: 오 신기하다. 나한테 설렘이라는 건 좀 아는 사람, 내가 처한 일상생활에 등장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거라고 생각을 해왔거든. 내가 틴더에서 얻는 건 오히려 일종의 두려움이야. 내가 아는 사람한테는 무리하게라도 막 들이대는 게 가능해. 왜냐하면 그 사람과는 쌓아 온 맥락이 있잖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상대가 알고 있으니 나중에 잘 안 되더라도 창피함이 덜하고, 상대가 어디 가서 “야 얘가 나한테 막 들이댔다” 이런 말을 안 할 믿음. 근데 틴더에서는 내 사진을 공개한 상태에서 괜히 관계를 얕게 진전시키다가 나중에 망하면 그게 언제 어디서 나한테 해가 될지 모른다는 그런 망상적 두려움이 있어. 사람들은 틴더의 ‘휘발성’에 편안함을 느끼던데, 난 오히려 그런 측면에서 틴더가 더 부담스러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방식으로 +1 될 거라는 게 싫은 거야. 생각해보니 내 기저에는 모든 인간관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그런 불순한 사상이 있는 것 같아. 내가 충분히 맥락을 쌓아온 사람한테는 나의 실책이나 쪽팔림이 큰 손실로 다가오지 않는데, 틴더에서 만난 애들은 내 인생에 해가 될 가능성이 더 큰 애들이니까? 근데 나 되게 속물적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힛.
Q4. 너는 틴더에서 자기를 어떻게 드러내?
다니엘: 얼마 전에 얘기한 친구는 자기한테 숨겨진 자아가 되게 많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게 없걸랑. 여러 가지 면모가 있긴 하지만 그걸 사람들한테 굳이 숨기려고 하거나 이렇질 않아서. 그래서 나는 매력적으로 보일 나를 어떻게 짧은 문장으로 잘 드러내는지가 고민이야.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너무 구체적이지 않게 영어로 써 놓음. 은근함이 중요하죠.
팜지: 나는 너랑 달리 좀 숨겨진 면모가 있는 것 같고, 친한 사람들한텐 그걸 다 드러내는데 오히려 틴더에서는 잘 못하겠어. 결코 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일부의 면모만 드러내게 되니까 그에 맞는 역할 수행을 하고 있다는 압박감도 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다니엘: 근데 매력적인 부분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
팜지: 근데 나는 내 매력적인 부분이 뭔지 모르겠네(근본적 깨달음). 남들이 내 매력적인 부분을 알 수 있을까? 틴더에는 속물들밖에 없는데(ㅋㅋㅋ) 내 시헤녀스러운 부분을 드러내야 먹히지… (슬픔) 나는 그냥 틴더랑 안 맞네. 나는 틴더를 좀 무시하는듯…
다니엘: 너는 왜 무시하고 있어 틴더를ㅋㅋ
팜지: 그러게. 그 일회적인 만남이라는 게…(편견 폭발) 나 물론 일회적 만남 좋다고 생각해. 퀴퍼 같은 곳에서의 그 수많은 일회적 만남 얼마나 좋아! 근데 내게 틴더는 그렇게 안전하지 못한, 빻음이 넘쳐나는 공간으로 여겨지니까. 안전하다는 게 보장되면 막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치만 안전하고 내 스타일이 아닌 사람이랑 하고 싶지는 않아!!!! 어려워!
Q5. 틴더에서 실제로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은 틴더에서 만났으니까 이러이러한 관계를 맺을 상대’로 제한이 되는지?
다니엘: 오.. 처음엔 그런 거 생각 못했지. 근데 물어보더라고. 근데 그게 좋은 것 같아. 틴더라는 플랫폼이 오직 거리 기반이고(물론 나이 등 설정할 수 있지만) 너무 랜덤하니까 그렇게 앞서서 제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나와 일상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만나려면 따로 시간을 낼 수밖에 없는데.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으면 내 일상이 망가질 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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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틴더 속의 내 섹슈얼리티, 아니 그냥 내 섹슈얼리티~!~!~!
Q1. 틴더를 통해, 혹은 꼭 틴더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최근 너의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었어?
팜지: 일단 틴더는 나의 섹슈얼리티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어. 나의 고착화된 유교걸 마인드가 가로막았달까. 근데 이게 나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게, 틴더에 괜찮은 사람 정말 없던데. 이거 굉장히 순화한 표현. 진짜 말도 섞기 싫은 사람들이 30명씩 연속으로 나와(극대노). 나중엔 욕하면서 (사진) 넘겼어. 너무 눈이 피로해서 여성 포함으로 전환하니까 그제서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들이 생겼어. 외형의 문제가 아니야. 도대체 남자들은 왜 본인을 그런 곳에 전시할 때조차 예의가 없는 거야? 잘생기거나, 몸이 좋거나, 둘 다 안 되면 사진이라도 열심히 찍든가(눈만 내놓은 이상한 사진 당당히 걸어놓는 거 볼 때마다 혈압 올랐다), 프로필이라도 성의 있게 적거나 해야 할 거 아니냐고. FWB는 무슨 아무나 하나? 진짜 근거 없는 자신감과 무성의함 때려주고 싶어… 여튼 그런 이유에서 난 별로 유의미한 경험은 못했고. 그치만 어디선가 ‘무해한 변태적 섹스’라는 말 들었을 때 너무 좋았어. 하나 확실한 건 내가 얼마나 정상성에 갇혀있는 사람인지 틴더를 통해 깨닫게 된 것 같긴 해. 얼마나 그걸 변화시키기가 어려운지도 ㅠㅠ. 페미니즘 같은 경우엔 앎이 바로 삶으로 연결이 되잖아. 알았으면 바로 행동으로도 나타나고 누가 빻은 말 하면 뒤통수 때리고 싶고. 근데 섹슈얼리티에 관해선 이런 선택지들이 열려있다는 걸 아는데도 거기에 발도 못 담근다는 게… 진짜 어려운 거 같아. 지식은 늘어나는데 그게 삶으로 연결이 안 된다는 거. 되돌릴 수 없다는 느낌도 있고. 심지어 지극히 순결주의적이기까지 하군. 근데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을까.. 그냥 여기서 살다 보니까? 난 교육받은 거지. 확실히 무해한 변태적 섹스에 대한 욕망은 되게 크지만 안전하게 실현할 상대가 없잖아. 안전하지 못한(한국 남성일 가능성 농후) 상대와 불상사가 생겨버리면 그건 내 인생에 치명적이고!! 여튼 뼈교걸이다 난~
다니엘: 틴더에서 FWB를 실제로 만났어. 방학 때 시간이 많으니까 마음에 여유가 많아서 가벼운 만남을 도전해보고 싶었고 그 사람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었음. 학교 원어민 선생님이었고 만나기 전에 계속 카톡으로 일상 대화를 했어. 나도 2년 전만 해도 머리로는 섹스가 뭐 별거냐 하고 생각하면서도 사랑 없이 하는 섹스에 거부감이 있는 유교걸이었어서 나랑 FWB하자고 했던 애랑 안 좋게 헤어진 경험이 있다? 근데 경험할수록 유교걸 마인드가 희석되나 봐. 우리가 대상화를 너무 안 해봐서 그런 거 아니야? 아무튼 이 경험을 계기로 둘을 분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근데 아직도 잘 모르겠긴 해.
Q2. 네가 들었거나, 알던 연애/섹슈얼리티(성) 경험 중에 부러웠던 게 있다면? 한 번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팜지: 아 내가 자원이 너무 없어지가지고…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상태고…(오열) 그치만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거 나는 다 해보고 싶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그런 것도 쩔고(행복). 너무 아프게 하는 거 빼고 다 해보고 싶어. 그리고 트위터에서 본 말인데 강간 판타지라는 게 초절정 빻은 한녀로서의 끝판왕 욕망이긴 하지만 그게 사실은 무해하면서도 (이 세상에, 특히 한국에 없는) 남자와의 신뢰관계에서 나오는 역할적 판타지라는 거잖아. 말하자면 암묵적 동의 하의 섹스. 그런 것도 고찰해볼 필요가 좀 있는 듯…(두렵) 사실 내가 p sexual적인 면도 되게 커. (*P sexual: 드라마, 영화, 웹툰, 소설 등 가상의 서사 속 인물에게만 끌림을 느끼는 경향. 척박한 조선 땅의 여성들이 현실의 개차반 같은 남자들에게 학을 떼 반강제적으로 P sexual이 되는 슬픈 맥락도 있음을 유념해야 함.)
다니엘: 난 진짜 진짜 진짜 S/M. 근데 내가 지금은 너무 바쁘고… 섹스라는 게 온갖 서사가 엄청 덧씌워진 활동이다 보니까 몸뿐 아니라 마음의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잖아. 안전도 걱정되고, 가족이랑 같이 살면 집에서 못하니까 공간도 필요하고. 그러니까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파트너를 찾고 싶음. 나도 너처럼 아픈 걸 싫어한다 생각했거든? 복싱 배울 때도 때리는 건 좋았지만 맞는 건 싫었음. 근데... 실제로 당해보니 약한 폭력행위가 생각보다 괜찮았어. 내가 해보지 않으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잘 몰라서 그런 거지 더 알게 되면 여러 가지 하고 싶을 것 같다.
Q3. 네 경험 중에 굉장히 별로였던 경험은 왜 별로였어?
다니엘: 첫 섹스가 굉장히 별로였다. 일단 너무 갑작스러웠고. 그날 바로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제대로 말을 못함. 그리고 걍 너무 신체적으로 힘들었어. 잘 안 들어가서. FWB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그때는 사랑 없는 섹스는 별로다라고 생각했던 때였기 때문에, 걔를 약간 좋아하는 마음도 있었어서 걔가 나한테 제안을 했을 때 오케이를 했지만 그 관계는 나의 판타지에 부응하지 못했어. 그리고 내가 섹스에 대해 너.무. 몰.랐.어. 나는 그걸 꼭 밤에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하고 나서 바로 자야 하는 줄 알았어. 물론 잠을 자긴 했지만 막 잠이 오진 않더라고. 배가 고파. 또 무지한 내가 느꼈던 두려움을 걔가 충분히 안심시켜주지도 못했어.
팜지: 나는 삽입섹스를 해보진 않았지만 섹슈얼한 행위를 해보긴 했는데, 전 애인들과의 그걸 떠올릴 때마다 다 싫어. 예전의 나는 사랑 없이는 그런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너무 갇혀있어서, 내가 당시 정서적으로 풍족해서 그걸 하는 것마냥 굴었던 것이(수치)... 걔네들한테 그런 인식을 심어준 게 빡쳐. 물론 나도 그 당시에는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냥 훨씬 더 가볍게 임할 걸 이런 생각. 여자들이 할 때 별로 좋지도 않은데 좋다고 연기한다고 그러잖아. 일종의 그런 억울함이지. 그리고 한가지 기준이 생겼어. 경험 없는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이랑 하는 게 좋겠다는.
Q4. FWB(Friends With Benefit), ONS(One Night Stand), Serious relationship을 네가 정의해본다면?
팜지: 나는 일단 benefit의 용례가 그런 방식이라는 게 좀 웃긴다. 그냥 프렌즈 위드 섹슈얼 어쩌고 하면 될 것을… 여튼 나한테 FWB는 어쨌든 친구 개념이야. 만나서 밥도 먹고 가벼운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친구이되 나랑 몸이 잘 맞는다는 거? 그치만 진지한 관계로의 발전은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갖고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원나잇은 정말 하루 보고 말아야 할 사이. 연락처도 교환 안 하고. 사실 근데 보통 원나잇에서 너무 좋으면 FWB가 되는 거 아냐? 그리고 Serious Relationship은… 음 FWB와 비교하자면 FWB도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느끼면서 밥을 먹거나 대화도 할 수 있는데, 그 때의 관계와 침대에서의 관계가 구분되는 사람. 반면 Serious Relationship은 그게 구분이 안 되는 관계인 거지. 내 직관적인 인식은 그래.
다니엘: 너가 정의한 거랑 비슷. FWB는 섹스하는 친구인데 마음은 열지 않은? FWB는 FWB로서 보고 싶어. 그 사람과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 같아. ONS는 안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왜냐하면 좋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넘 위험하다고 느꼈음. 또 사랑과 섹스를 분리할 수 있어도 섹스에 정서적인 친밀감이 아예 필요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FWB까진 할 수 있어도 ONS는 너무 인스턴트다. 만약 그 상대가 그레이[2]라면 한 번 해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너무 리스크가 크잖아. 물론 가끔 인스턴트가 극도로 땡긴다면?! 진지한 관계는 너가 얘기한 정의가 좋은 것 같아. 침대에서와 평소에서의 그 정서적인 관계가 구분이 가지 않는?
Q5.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다니엘: 겁이 많아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싶다. 연애와 성관계에 대한 서사가 정말 많지만, 그 중 대다수는 소각해서 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평범하고 무난하고 안전하게 호기심을 충족하는 관계를 원해.
팜지: 말하다보니 유교걸로 살아온 내 인생이 더 한스러워지는 측면이 있는데. 근데 또 막상 ‘내일부터 날 해방시킨다 부들부들’ 이렇게 선언한다 하더라도 당장 뭘 실천하긴 어려울 것 같아. 사실은 내 욕망이 내 인식과 지식을 아직 못 쫓아가는 상태일 수도 있고… 그치만 나는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에 나를 만족시켜줄 무해한 변태적 섹슈얼 상대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좀 더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자세를 가져야겠어. 후후.
[1] ‘인위적인 만남 추구’의 줄임말. 일반적으로 연애관계가 친구나 지인처럼 알고 있던 사람들에서 발전하는 ‘자연스런 만남’에 더해, 소개팅이나 데이팅 앱 등 ‘인위적인’ 계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만남을 추구’한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2]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으로,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데에서 성적 쾌락을 느끼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