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동체라는 거짓말 - 정세진
오늘도 등굣길에 마포자이 2차를 따라 걸었다. 매일 경험하는 출근길 지하철 1시간은 이 아파트에 산다면 얼마나 좋을지를 꿈꾸게 한다. 그러다 이 아파트의 매매가가 최소 14억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접는다. 지방 중산층 가족의 자녀인 나는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 몇십 년, 어쩌면 평생 대출 없이는 이곳에 내 명의의 세대를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비단 마포 자이 아파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아파트는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소유할 수 있다. 한국의 아파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격 상승률을 기록하며 지금의 미친 가격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매매가는 특히 서울에서 극단적으로 상승했는데, 여기 마포구의 평균 집값은 2005년 말에 3억 4천만 원에서 2018년 2분기에 7억 6천만 원으로 124%나 상승했다! 그러나 아파트는 천정부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여러 주택 종류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유형으로 꼽힌다. 아파트는 1960년대에 대안적 주거 양식으로 도입되어 오늘날에는 한국의 보편적인 주거 양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아파트 거주 가구 수가 1000만 가구를 돌파하면서 현재 전 국민의 50%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한국인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되었다.
아파트는 여러 가치들을 반영하며 진화해왔다.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폐지 이후 아파트가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고 높은 경제적 가치를 가지게 되면서 아파트는 브랜드화, 단지화되었다. 또한 사생활 보호에 대한 욕구와 개인주의적 가치가 중요시되면서 아파트는 더욱 폐쇄적, 배타적인 내부구조를 갖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들은 현대인들의 생활양식에 맞는 주거양식의 진화라고 평가할 수 있으나, 동시에 많은 사회문제들을 낳았다. 내부 거주민들 사이 대화의 단절로 인한 상호부조적 공동체의 부재,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등장 등 아파트에서 파생된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 상황들의 해결을 위해 최근 아파트를 경제적 가치로만 바라보았던 과거를 반성하고, ‘아파트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현대적인 주거 양식인 아파트와 구성원 간의 소통 및 관계가 중시되는 공동체는 양립 불가능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아파트 공동체는 실제로 성립 가능할까? 또 앞서 언급된 여러 문제들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공동체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목표나 삶을 공유하면서 공존할 때의 조직’이다. 공동체의 형성 과정은 공간, 상호작용, 연대를 통해 설명된다. 우선 ‘공간’은 구성원들이 동질적인 자아지역*으로 인식하는 곳이다. 과거 사회의 공동체는 주로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물리적 공간이나 사회경제적 배경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따라서 빈번한 대면을 통한 긴밀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졌다. 반면 오늘날 사회는 고정된 지리적 경계를 갖지 않는 현상 공간, 개인에게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공동체는 전통적인 공동체보다 물리적인 경계가 불명확한, 장소에서 공간으로 확장된 형성기반을 가진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인간관계의 망과 조직, 사회체계 및 제도를 포괄하는 일반적 개념으로서,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과정을 말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연대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들의 참여, 호혜, 소통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체 의식이 형성된다. 즉 현대 사회에서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일정한 공간을 공유하며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연대를 형성할 때 완성되는 집단이다.
아파트에서 형성되는 공동체는 정치성이 두드러진다. 아파트는 개인주의 등 시대의 욕망을 반영하는 형태로 모습을 바꿔왔고, 동시에 그 자체로 시대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생산했다. 과거 박정희 정부는 아파트를 근대적 주거 양식으로 확립하고자 아파트를 중산층의 조건으로 만드는 정책들을 시행했다.* 이는 여러 시대적 상황들과 맞물려 아파트 가격 급등을 초래했고 보수성, 안정성 등을 당대의 주요 가치로 만들었다. 이처럼 아파트에 거주하는 개인들과 아파트라는 공간은 서로의 욕망을 먹으며 변화해왔다. 따라서 정치적인 공간의 상호 이질적인 개인들이 형성하는 아파트 공동체는 다양한 욕망들이 교차하는 정치적인 특성을 갖게 된다. 또한 공동체가 폭력으로 작용하지 않으려면 민주주의와 더불어 차이와 다양성이 인정되고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민주성은 의사결정 과정 및 공동체 운영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때 실현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노력들은 위의 요소들을 잘 고려하고 진행되었을까? <공동주택 커뮤니티 활성화 사업>은 2011년 정부 주도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 사업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사업은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을 격려하여 협력, 연대하는 아파트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또한 해당 사업은 아파트 내의 분쟁과 갈등, 비리 역시 아파트 공동체가 활성화 되면서 자연히 없어지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하에 이 사업에 참여하는 아파트 단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시, 구청의 보고서와 지역 신문들은 해당 사업이 실제로 주민들의 상호 교류를 늘렸고 신뢰, 친밀감, 연대감을 전반적으로 개선했다고 평가한다. 행정가들이 공동체 활성화의 첫 단계로 설정한 ‘소통 활성화’가 이루어졌으니 성공적인 아파트 공동체 형성 역시 문제없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 사업이 목표하는 공동체는 민주성과 정치성의 맥락에서 세 가지 한계를 가진다.
이 사업은 공동체 사업에 참여하는 주체들을 동일한 물리적 장소에 거주하는 고정적인 개인들로 설정한다. 공모사업에 선정된 우수 사례들은 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강좌, 소통 및 주민화합을 위한 행사 등에만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2017년 우수사례 대상에 선정된 충북 청주시의 삼호아파트는 고령 세대와 젊은 세대 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이웃의 정을 바탕으로 침체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을 목표하였다. 사업은 생태환경, 자원순환, 에너지 절약, 공동체 생활의 네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구체적 사례로는 목화밭과 꽃밭 조성, 재활용 및 수도, 전기 절약 캠페인 등이 이루어졌다. 일련의 사례들은 단순히 과거 사회의 전인격적 공동체에서 하던 활동들을 반복하는 것에 그쳤다. 그 이유는 꽃밭 조성 사업에 대해 ‘처음에는 몇몇 어르신들이 멀쩡한 담벼락에 왜 화분을 설치하느냐며 훈계하셨는데’라는 묘사에서 명확해진다. 해당 사례들은 공동의 활동을 통한 주민 간 소통 증진을 공동체 활성화의 열쇠로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공동의 삶에 참여하는 주체들을 잘못 설정한 것에서 기인한다. 개인들은 사건과 의제에 따라, 본인의 이익과 관심에 따라 결집하고 해체하는 유동적 주체이다. 이들을 같은 장소에 거주하는 고정적인 개인들로 인식하는 것은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상호 이질적인 개인들의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단순한 친목 도모 활동으로만 이루어지도록 이끈다. 주민 모두가 참여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형성하려면 주민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발굴하고 의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공동체의 주체들을 재설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공동주택 활성화 사업에서 상정하는 공동체는 아파트의 정치성을 고려했다고 보기 어렵다. 해당 사업에서 아파트 공동체는 ‘살기 좋은’, ‘행복한’, ‘즐거운’ 등의 긍정적 어휘로 묘사되며, 목표하는 공동체는 ‘소통’, ‘연대’, ‘이웃 간의 관심’ 등을 통해 설명된다. <아파트 공동체 프로그램 활성화 운영 매뉴얼>은 사업의 목표를 ‘아파트에서 입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공유하면서 공동으로 생활하며 이웃과 정을 나누고 서로를 배려하는 주거문화’ 형성이라고 밝힌다. 이 때 ‘공유’는 나눔의 대상과 정도, 강도에 따라 공동체의 형태와 내용을 달라지게 하는 추상어이다. 이외에도 해당 사업에서 공동체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각각 긴장과 난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찰 없이 사용된다. 개념적인 용어들로 공동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파트 공동체를 비정치적 주민의 모임으로 상정되도록 한다. 이는 개인들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공동체 참여 주체들의 욕구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해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공동체 형성을 어렵게 한다.
공동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아파트 공동체와 참여 민주주의의 밀접한 연관성에 대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아파트가 참여 민주주의 이상이 구현될 수 있는 장소라고 확신할 수 없다. 공동체의 민주주의는 화폐와 노동을 비롯한 다양한 물적, 정서적 자원들의 획득, 이용, 재생에 대한 결정을 주민들이 평등한 자격으로 행할 때 가능하다. 아파트 공동체의 경우, 민주주의는 관련 규율이 미비하다면 본질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개인들은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와 공동체 활성화 사업에 참여 가능한 시간 등에서 각자 다르고, 이로부터 발생한 권력 차이에 의해 공동체의 운영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비대칭적인 권력을 가질 경우 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상대적 약자들이 소외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결국 아파트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부의 규약과 이에 대한 행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민주적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행정은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주민활동을 지지하고 결정의 공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은 컨설팅 인력 지원과 공모사업을 통한 일종의 모델 수립에만 초점을 둔다. 공동체 참여 주체들 간의 평등이 전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동체의 지속성에만 주목하는 기존 사업은 민주적 아파트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없다.
기존 사업들은 아파트 공동체의 형성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 지금까지 시행된 일련의 사업들은 주민 간의 소통 활성화와 친목 도모를 통해 형성된 아파트 공동체가 공동 의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자치 기구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은 아파트 공동체가 이처럼 기능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기존 사업들은 공동체의 정치성과 민주성보다 사업의 지속성, 모델화에만 집중했다. 이러한 접근은 과거 사회에서처럼 개인들의 소통만 이루어진다면 공동체가 형성될 것이며 그 공동체는 마땅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시대착오적 인식에 머물러 있다.
오늘날 아파트는 재산증식의 주요 수단으로 여겨진다. 한국에 아파트가 도입되던 때에 입지와 평수에 따른 일원적인 가치체계가 아파트 가격 측정에 이용되면서 아파트의 상품화를 용이하게 했다. 그 결과 아파트는 무엇보다도 경제적 욕망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거 사회의 전인격적인 공동체를 아파트 내부에 이식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파트가 경제적 가치로 여겨지는 현 상황에서 형성되는 공동체는 구성원 개인의 경제적 이익 도모를 목표로 하여 이기적, 배타적일 가능성이 높다. 아파트 공동체에 대한 충분한 성찰 없이 시행되는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 과연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동체를 형성할까? 구성원들 간 상호교류와 연대가 이루어지는 민주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려면 아파트라는 공간 자체를 경제적 가치와 분리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를 명분으로 진행되는 사업들은 대부분 극한의 이기주의가 초래한 문제들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한다. 하지만 이 사업들은 궁극적으로 아파트를 경제적 가치와 분리하는 데 실패했다. 아파트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시도 또한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살기 좋은’ 아파트로 만들어서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 된 지 오래다. 이처럼 기존 문제 현상들의 원인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이웃 간의 소통을 통한 주민들 간 갈등 해결 등을 목표하는 위 사업은 기만적이다. 오히려 정부가 공급 중심의 아파트 정책으로 야기한 문제들을 개인의 몫으로 전가한 것에 불과하다. 공동체에 대해 치밀하게 논의하지 않는 한, ‘이상적’인 아파트 공동체는 어디에도 없다.
참고문헌
박경섭. (2018). 공동체 만들기의 정치 : 이념, 담론, 실천. 인문학연구 제 55집. 7-34
김현. (2018). 통치의 공간에서 정치의 장소로. 철학연구. 121. 149-178
정한목. (2017).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반비
김미영. (2015).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공동체의 여러 형식. 사회와이론. 181-218
사진출처
1) 마포구 대흥동 마포자이 2차 : 최락선. 신흥부촌 마포구 대흥동. 마포자이 2차 84m2 8억 4500만원에 거래. 조선일보. 2017.06.08
2) 삼호아파트 꽃밭 조성 사업 : 2017 공동체 활성화 우수사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