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타이프]
나의 세계는 2평이다. 이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이보다 넓어지지도, 좁아지지도 않는다. 그곳에는 언제든지 내 몸을 누일 수 있는 일인용 침구가 한쪽에 깔려 있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뭔가를 끄적일 수 있도록 수첩과 펜, 잡다한 물건들이 놓인 테이블이 가까이에 있다. 거주하는 방의 형태에 따라 구석에는 책장이라든지 수납함이 자리하고 있겠지. 운이 좋다면 벽 하나를 온통 차지하는 커다란 창으로 바깥의 거리를 조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이것이 나의 전부다.
오랫동안 나의 세계는 2평짜리 공간 안에서 유지되어 왔다.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아파트에 살던 어린 시절에도, 다양한 평수의 원룸 혹은 투룸을 전전하던 이십 대에도, 결혼이란 걸 하고 방 세 개가 딸린 좀 더 넓은 집으로 옮겨갔던 시기에도, 그래서 거실과 주방을 내 마음대로 꾸미거나 원하는 만큼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던 때조차도, 내 의식 속에 또렷이 박혀 있던 나의 영역은 늘 2평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이건 무엇보다 정서적 공간에 관한 얘기다.
그 세계에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거의 모든 일들을 했다. 일감으로 받아온 원고를 쓰고, 틈틈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듣고, 때로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잤다. 주로 밤에 일하는 습관 덕분에 대낮에도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어 어두컴컴한 방에서 나는 마치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양치식물처럼 무럭무럭 성장해왔다. 뒤적거리다 만 책과 노트가 아무렇게나 펼쳐진 채로 여기저기 쌓여 있고 가끔은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질 정도로 느슨한 삶의 공간이지만 나의 모든 것이 그곳으로부터 싹이 나고 움튼다.
2평짜리 내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는 생각보다 튼튼하며 견고하다. 아주 가까운 이에게도 안으로 발을 들이거나 함께 나눠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곳은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나와 세상을 가르는 경계이자 분리선이며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방어 기지니까. 내 생각과 의식이 날로 쌓여가는 독특한 구조물이자 쉴 틈 없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작은 공장이기도 하니까. 하루 종일 방 안에 정물처럼 담겨 있는 날이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날이든, 나의 영혼은 삼십 년 넘게 여전히 그곳에 거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