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Mar 15. 2024

보홀여행 3. 로복강 반딧불이

보홀여행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열대의 해는 하늘과 바다에 온갖 색을 뿌리며 사라졌다. 아직도 보홀에 도착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니. 태어나서 하루를 이토록 알차게 보내본 적이 있었나? 밤을 새우고 날아왔는데도 피곤하지 않다. 마법의 섬인가? 아직 남은 놀 거리가 산더미처럼 많으니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조그마한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거대한 왕국을 여행하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게 아닌가 보다. 여행의 시공간은 온통 뒤틀어진 새로운 우주에서 살아보는 기분을 내는 것 같다.

첫날의 대미를 장식할 관광은 바로 로복강 반딧불 투어다. 그곳은 바다로부터 육지를 향해 한 시간가량 가야 하고 반딧불을 보려면 깜깜한 밤을 만나야 한다. 다른 여행지에서는 여행 중 밤에 하는 일이라고는 야시장을 간다거나 분위기 있는 카페에 삐딱하게 앉아 그곳 맥주 맛을 홀짝거리는 정도였다. 이곳 보홀의 밤은 색다르다. 지난 일주일은 구름이 끼고 간간이 비도 왔다고 했는데 부산에어 기장의 부드러운 랜딩이 좋은 징조였던 걸까. 내내 날씨가 청명할 거라고 한다.

온갖 푸른색으로 눈부셨던 한낮의 솔레아 리조트의 풀장에 등불들이 켜졌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불들이 수영장 물에 비춰 수만 개의 빛으로 떠오른다. 우주에서 날아온 별빛도 풀장 수면에 내려앉겠지. 아빠와 함께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행복해진다.

천연자원이 잘 보존된 보홀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었던 덕분에 희귀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오늘 밤  보러 갈 반딧불이도 그중 하나다. 청정지역이

라 볼 수 있는 반딧불이를 오래도록 만나려면, 사람들의 발길도 언젠가부터 제안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 한구석엔 두 가지 감정이 부딪는다. '또다시 오고 싶다'와 '그러면 자연이 빨리 망가지지 않을까'라는 염려다. 애석하게도 어느 선에서 멈춤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관리'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면 때가 늦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보홀이라는 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우리가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다.

낮에 길에서 만났던 가이드 저스틴이 숙소로 픽업을 와 준다고 했다. 일찌감치 배를 불린 우리들은 약속시간보다 먼저 로비로 내려왔다. 정글 속 벌레들을 피하기 위해 모두 긴팔 옷을 입었다. 모두는 아직도 흥분상태라 입꼬리가 춤을 춘다.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는 불문율을 고사하고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려 하는 이유다.

이미 15인승 승합 차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 가족 네 명의 자리만 이 빠진 것처럼 남았다.

필리핀 승합차도 지프니와 다름없이 천장이 낮다. 다들 끙끙 소리를 내며 차에 오른다.

내 옆자리엔 스페인어로 재잘거리는 젊은이 두 명이

이 앉았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반면에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은 너무도 근엄할 것 같다.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창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웃는 것이 좋다. 웃는 것이 이쁘다.  그런데 자꾸만 입꼬리가 내려간다. 세상이 다시 창조된다면 입꼬리가 올라간 인간으로 창조되면 어떨까. 여행으로 기름칠이 된 나의 뇌는 엉뚱 발랄 쪽으로 특화되어 간다.

도로정비가 안 된 길을 달리니 참 많이도 덜컹거린다. 여전히 정신은 맑아 흔들림 하나하나가 몸에 꽂힌다. 점점 사방이 깜깜해지고 길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열대우림 속의 인신매매범들에게 잡혀가고 있는 것 같은 또 다른 엉뚱한 생각을 했다. 여러 인종들을 정글로 끌고 가서... 인간 연구실에 넣고... 공상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상상은 자유다. 칠흑 같은 창밖엔 검은색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희미한 불빛이 보이자 차는 원두막 같은 집 앞에 섰다. 차 문이 열렸다. 머리를 겸손히 한 후 땅을 밟았다.

공기가 시원하다. 보이지 않는 검은 숲에서 바람이 분다. 물 냄새도 난다.

굵은 대나무로 지어진 안내소 앞에는 벌써 여러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편에는 구명조끼도 수북이 싸여있다. 인원을 책임지는 가이드는 연신 손가락으로 머리수를 세고 있다. 어두운 강에라도 빠지면 난감해질 것이 뻔하니까. 강 아래쪽 언저리에 초록 물결이 넘실댄다. 깜깜한 정글 속의 강은 자연의 소리만 담고 있다. 모두는 자연 속 고요를 즐기는지 모두들 침묵했다.

드디어 승선을 하기 시작했다. 강물결에 배가 출렁이다 자칫하면 균형을 잃게 된다. 남의 나라 남자 손이던 어떻던 그저 내 앞에 내민 손들을 꼭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또 한 명의 늙수구레해  보이는 대장 같은 가이드는 높은 곳에 서서 이것저것 지시를 한다. 보아하니 관광객의 덩치를 가늠하여 배의 무게중심을 잡는 것 같다. 나는 어떤 부류로 분류될까? 보나 마나 뻔하다. 슬금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이 칡흙 같은 밤, 남의 나라 열대우림 속에서 뭔 일들을 하고 있는지. 친구를 위해 온몸을 던지는 베트남 전쟁 영화'디어 헌터'가 떠오른다.

뱃머리엔 날렵히 균형을 잡고 서있는 가이드가 플래시를 들고 강을 비춘다. 히끄무레한 덩어리가 물살에 밀려 내 곁으로 왔다가 다시 떠내려간다.  소름 끼치도록 놀랐지만 스티로폼이다. 이곳까지 스티로폼이 찾아왔다. 어쩔까! 그래도 떠내려 오는 것들 대부분은 물풀들이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 오늘 배들과 스쳐갈 땐 배는 속도를 줄여야만 한다. 서로가 만든 파도에 배가 뒤집힐 수도 있어서일 게다.

나는 뱃머리 제일 앞쪽에  앉았다. 어디쯤 가야 반딧불이 보일까! 갑자기 가이드의 플래시가 멀리 서 있는 한 나무를 가리킨다. 유독 그 나무에만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다. 아! 반딧불! 또다시 지나쳐 얼마를 갔을까. 배가 엔진을 끄고 강기슭에 닿을락 말락 다가간다. 우와!!! 크리스마스트리의 깜박이는 장식처럼, 영화 아바타의 신비한 나무처럼, 작은 빛들이 깜박이며 날아다닌다. 유독 한 나무에만 반짝이들이 있다. 경이로운 광경에 밧딧불이를 보러 온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하늘로 향했고 소름 끼치는 감동으로 입이 다물수 없다.

철썩이는 작은 물결소리, 하늘의 별과 반딧불이 모두 다 내게로 들어온다. 잡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뱃머리 가까이에 있던 가이드가 두 손을 모아 반딧불이 한 마리를 잡아 내 손위에 얹어주었다. 한참을 날아가지 않고 불을 반짝이며 손가락 위를 걸어 다닌다. "날아가~하늘로~그리고 꼭 잘 살아~" 내게 할 말이 있었을까? 내 응원을 듣고 싶었을까? 날아가지 않고 내 손 위에 머문 일분의 시간이 영겁처럼 다가왔다. 배가 다시 엔진을 걸고 얼마 큼의 거리를 달려가도록 반딧불이는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있는 나무까지 가려면 힘들 텐데. 하늘로 손을 뻗어 날갯짓을 도왔다. 그곳의 모두는 똑같은 마음으로 반딧불이와 작별 인사를 했다. "잘 살아~"따듯한 소원들을 날개에 싣고 반딧불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여러 나라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로복강의 반딧불이를 응원했다. 언어도, 삶의 배경도, 살아온 방식도, 제각각이었지만, 작은 반딧불이에게 건네는 응원에는 순수한 마음만 가득했다. 깜깜한 정글도, 선듯하게 불어오는 열대의 건기바람도, 모두 그랬다.



보홀 솔레아리조트의 석양








매거진의 이전글 보홀여행 2. 알로나비치에서 만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