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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pr 23. 2024

감자에 싹이 났다! 잎이 났다!

어설픈 시골생활

초보 농부는 처음으로 밭을 갈고 감자를 심었습니다.

이웃 전문 농부께서 트랙터로 땅을 갈아주셨답니다.

트랙터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습기 먹은 황토색 속살이 드러났지요. 전문가는 거름을 사방 1~2미터에 한 포대씩 뿌리고 맥가이버처럼 비료 포대를 허리춤에 묶은 후 술술 뿌리십니다. 저도 따라 했어요. 전문 농부처럼 할 수 없는 걸 잘 압니다. 제가 뿌린 곳은 쥐가 파먹은 것처럼 뭉쳐 있기도 하고 빈 곳도 보였죠. 그분 손엔 기계가 달려 있는 듯 정확했습니다. 평생 동안 농사를 지으셨으니 달인이 되신 거겠죠.

그래도 감자심을 곳에 줄을 띄우고 고랑을 만드는 것은 딸과 제가 했습니다. 다섯 고랑을 만드는데 등 쪽 근육과 손 목, 허리가 슬슬 아우성을 쳐서 중간중간 쉼이 필요했습니다. 멀칭도 저희 둘이 해내었어요. 풀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검은 비닐을 씌우는 것을 '멀칭 한다'라고 해요. 낮과 밤의 기온차가 비닐 안쪽으로 물방울을 만드는 효과도 있어요. 여러모로 이로운 것도 있지만 비닐이 주는 악영향도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가을걷이  후 나오는 비닐의 양이 아주 많거든요. 비닐은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고 하는데 종량제 비닐봉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처리하는 방법은 매한가지잖아요.

자연분해되는 비닐을 사려고 만지작거리다가 가격 때문에 그냥 돌아오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4월 4일에 감자를 심었습니다. 보통 씨앗의 세 배 두께로 흙을 덮으라고 하기에 열심히 지키려 노력했어요. 먼저 고랑을 따라 구멍을 팠습니다. 겸손히 엎드려야 땅의 결실을 볼 수 있으니 푸른 봄 하늘과 연초록 산과 들판은 잠시 잊어야 했지요. 구멍마다 감자를 한 개씩 떨구고 멀칭비닐 속흙을 포슬포슬하게 덮었습니다. 싹 눈이 하늘을 보게 놓아야 쉽게 싹을 틔우니 다시 확인해 가며 감자를 땅속에 앉혔어요. '잘 나오너라! 건강히 싹 틔우거라!' 속으로 웅얼웅얼 거리며 고랑을 따라가다 보니 벌써 끝이 났습니다. 시간도 내려놓고 계절도 내려놓는 농사는 아기 낳는 일이랑 똑같아 보입니다. 모든 것을 잊어야 아기가 잘 태어나거든요. 아기 받을 때의 기도는 감자를 심으며 하는 기도랑 너무도 닮아 있었어요. 본능적으로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있음을 땅이 알려줍니다.


2주가 지나자 여기저기 땅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감자를 심은 땅속에서 새싹이 힘차게 솟아오른 모습이 보였죠. 땅을 헤집고 나오는 여린 싹은 천하장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특하고 고맙고 자랑스러웠지요. 마구마구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감동처럼 똑같은 감동이  올라왔어요.

군데군데 아직 소식이 없는 곳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좀 더 기다려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아쉽고 속상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요 며칠 기온이 제법 따듯했어요. 비어 있던 공간에도 부끄러운 듯 땅을 가르고 나오고 있는 감자 싹이 보입니다. 세 군데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싹이 돋아 났어요. 늦된 녀석도 있고 여전히  나오지 못하는 감자도 있습니다. 일찍 나온 녀석들은 제법 건장한 모습을 갖췄습니다. 세상은 우리들이나 감자처럼 다양한 군상들이 살고 있는 듯 보여요.


시골에서는 일찍 눈이 떠집니다. 설레는 마음 때문일 거예요. 어느 곳에 뭐가 나오는지, 얼마나 자랐는지, 세포 속 궁금증이 일찍 일어나게 하는 마법을 부립니다.

오늘 아침도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눈곱도 채 떼지 않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새싹들에게로 달러 갑니다..

감자 싹에 이슬이 맺혀 있어요. 연둣빛 감자 싹이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가슴이 찌릿찌릿 감동을 알려옵니다.

모두가 오늘도 열심히 제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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