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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pr 27. 2024

부드러운 느낌의 오일파스텔그림

60대 버킷 리스트

몇 년 전부터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딸이 즐겨 그린 오일 파스텔  그림의 색감은 따듯하고 부드러워 보여 더욱 그런 맘이 들었다. 왜 바쁘지도 않은데 선뜻 그려보지 못했을까? 아무튼 오늘, 오일파스텔 원데이 클레스를 참여하게 됨으로서 깊이 간직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딸이 그렸던 그림처럼 멋지고 예쁠지를 기대해 본다.

다행인 것이 그리기 교실에는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어서 몸만 가지고 가면 된다.

그냥 조금 설렜다.


토요일 오후, 강남.

약 열 평 정도 크기의 오피스텔에 drawing club studio를 운영하고 있다. 안에는 갖가지 그림들, 도구들이 즐비하다. 곰돌이 모양의 석고에 보라색 물감을 칠하고 있는 커플뿐, 한가해 보였다. 무슨 클래스라 하면 최소 세 명 이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청자가 나 혼자뿐이다. 두꺼운 앞치마를 입고 창쪽의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5층이라 그런지 햇살에 눈이 부시다. 사월의 끝자락 토요일 오후는 헐렁한 도로만큼 넉넉하다.

 

여러 사람이 사용한 듯한 크고 작은 오일 파스텔이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A6, A4 크기의 그림 그릴 종이가 놓여있다. 어떤 크기로 할 건지 정하라는데 A4 용지를 가득 채울 것이 부담스러웠다. 엽서 사이즈인 A6 사이즈를 선택했다. 엽서 가장자리에 알록달록한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그림을 그린 후 들쭉날쭉한 가장자리는 마스킹 테이프를 떼어내면 액자처럼 말끔해진다.


언젠가 작은 엽서에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꽤나 고된 일임을 느낀 적이 있다.

엉성하게 그림으로 채우는데도 손목과 등 근육이 아파졌다. 그로부터는 화가들이 그린 큰 그림을 마주할 때 화가의 고됨이 느껴졌다. 혹시 어딘지 모르지만 어딘가 흔적을 남길 만도 한 화가의 땀방울을 찾는 습관도 생겼다. 물론 한 번도 찾아낸 적은 없다.


클럽의 주인(화가겠지!) 이 그림 샘플들을 보여주며 어떤 것을 그릴 것인지 고르라고 한다.

모두 두 권의 파일에 들어있는 샘플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종류가 많아서 어지러웠다.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과 비슷한 풍의 그림, 맑은 하늘의 들판 그림, 두 개를 우선 골랐다. 고흐 풍의 붓 칠은 잘못 그려도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아서였고 산과 하늘, 들판을 그린 그림은 빽빽하게 여백이 없어서 좋았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화가가 다가와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린 후로는 그려본 적이 없다. 그 말에 밑그림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는데 사양했다. 그냥 스스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화가는 상세히 오일 파스텔 크레파스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경계의 그러데이션 넣는 방법, 면봉으로 두 색을 섞는 방법도 손수 그려가며 알려준다. 내가 고른 그림에서 쓰인 열 가지 색

크레파스를 연습 종이 위에 꺼내주었다.

흰색과 검정인 무채색, 하늘색 종류 세 가지, 들판의 초록과 침엽의 짙은 초록색, 멀리 희미하게 사람들이 만든 길은 미색이다. 포인트로 들어갈 작은 지프차색은 밝은 주홍이고, 바퀴와 창, 그림자는 짙은 밤색이다. 열 가지의 색으로 이런 그림을 그릴 줄이야. 지금부터 열 개의 크레파스로 요술을 부려야 한다

"우선 스케치를 하시고 색을 칠해 보세요"


"뭐든 해봐야 안다.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꼭 스스로 해야 내 것이 된다" 자연스럽게 입을 꼭 다물었다.

마음속의 소망은 소망일 뿐,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려보자!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구석구석 빠진 공백에 어떤 색을 넣어야 할까? 왜 하늘은 이토록 파란색을 선택했을까? 내가 아는 하늘색은 이보다 옅은데... 들판을 그리며 스치는 바람을 느꼈고 하늘을 그리며 눈부신 해를 만났다. 자연은 모난 곳이 없어 그리기가 쉬웠다. 포인트인 주홍색 지프차가 제일 어려웠다. 자연스럽지 않은 직선들의 모임인 지프차는 둥글둥글한 능선과 뭉게구름 보다 불편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몸과 마음은 온통 색깔에 빠져 있었다.


한 시간이 흘렀다. 까마득한 산과 좀 더 가까운 상록수 나무들, 구불구불한 길, 그 위의 지프차,

샘플 그림만큼 멋져 보인다.


화가 선생님은 파스텔 오일이 다른 곳에 묻지 않도록 픽서티브를 뿌려주고 서류 봉투에 그림을 넣어주었다. "처음 그림을 이렇게 잘 그리셨네요. 잘 그리셨습니다" 칭찬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손목과 등허리가 조금 아파오더라도 간간이 오일 파스텔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할 수 있는 요즈음의 하루하루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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