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옥진 Jun 21. 2024

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버지.

죽음에 관하여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은 나의 기억 속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혹여 다른 사람을 내 아버지라고 한 것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잠깐 스쳤습니다.

이불을 들춰 손을 보니 나의 아버지였습니다. 일로 마디마디가 울퉁불퉁해진 야윈 손은 내 손과 똑같았습니다.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사랑할 때 가치가 있어요. 알아보지 못하고 가시가 되어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빨리 가시라고 웅얼거렸습니다.

아버지가 애달파서 더 오래 명을 붙잡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먼저 보내시고 자식들과 정을 떼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숨어 다니셨어요.

도대체 어디로 가셨는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차차 체념을 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쯤은 아버지의 거주지를 확인했어요.

정을 떼어 내야지만 마음이 편안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낱같은 정만 간신히 남았더랬지요.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아버지의 눈빛은 온화해졌습니다.

삼 년간 병원에 계셨어요.

산다고 할 수 없어요.

죽지 못해 산 것이지요.

'뇌출혈로 이렇게 오래 사시는 분은 못 봤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주치의의 말을 듣고 새삼스럽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입을 벌린 채 숨을 쉬지 않습니다. 아직 온기는 남아 있었어요.

'뭉크의 절규'가 떠올랐습니다.

아파서, 숨이 갑갑해서, 입을 벌렸을 순간에 저는 곁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풀로 붙인 듯 일자로 감긴 눈에는 간신히 속눈썹 몇 개가 붙어 있었습니다. 어릴적 내 길다란 속눈섭을 보고 이쁘다고 수없이 말씀하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아버지 눈에 붙어있는 몇가닥 남지 않은 속눈썹이 쓸쓸합니다.

숨이 멎어 풀어진 근육 덕분에 미간도 다림질하듯 평평합니다. 주름없는 모습으로 살아가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사느라 고생하셨어요.

이제는 평안하시길 빕니다."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소란스레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촐한 가족장을 하기로 이미 결정을 했습니다. 전하지 못한 지인들에게 작은 이해를 바랍니다. 나흘 간의 장례를 치르며 불편했던 가족과 화해도 했습니다.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변하는 기적 같은 순간도 만났습니다. 떠나는 사람이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아무리 가족장을 한다 해도 몸과 마음이 몽땅 소진되었습니다.

마음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심장은 티를 냅니다. 심심하면 멈추고 숨이 차올랐습니다. 내 심장이 아버지를 위로하는 거라 생각하니 조금은 덜 미안해집니다.


아버지는 관운이 있다고 어머니가 종종 말씀하셨어요. 이번 장례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순조로왔던 것도 아마 아버지의 관운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는 국가유공자로 화랑 무공 훈장을 받으셨습니다. 덕분에  동작동 국립묘지 납골당에 모실 수 있었답니다. 부부 합장을 해야 해서 먼저 가신 어머니의 유골도 아버지 덕분에 햇살을 보게 되었어요. 허허벌판에 혼자 계신 것 같아 마음이 내내 허허로웠었는데, 어머니의 유골함을 보니 마음이 좋았습니다. 두 분의 허락 없이 한자리에 나란히 들어가셨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부부의 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부터 지금까지 왜 이리 하늘이 맑은지요. 눈이 부신 날이 저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며칠 내내 계속 잠을 자고 누워 있습니다. 도대체 기운이 나질 않습니다. 가라앉아 있는 마음이 끝날 것 같지 않지만 시간이 약이려니 하고 견뎌 보겠습니다.

저도 부모님처럼 언젠가 세상을 떠날 겁니다.

남은 인생 순하게 살려 노력하고 싶어 집니다.


"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버지 "

작가의 이전글 나 없으면 어떻게 살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