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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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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5. 2024

미나가 셋째를 낳았다.

산파일기

둘째 아기를 받으며 고생고생을 했던 것과는 반대로 녀석은 순식간에 태어났다. 그들과 나의 계획대로 착착 맞아떨어졌다. 풀을 준비하고 적당한 온도로 물을 받고, 가족들 모두는 이제 막 꿈나라로 갔을 때.

부산하고 긴장한 내 마음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

발뒤꿈치를 들고, 목소리를 깔고, 집안의 환한 불들을 거의 소등했다. 진통이 자주 오는 것은 아기 만날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척도다. 호흡에 힘이 들어가는지 들어야 하기에 귀만 쫑긋하다.

샤워를 하고 싶다며 물을 만지던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막바지임을 알게 했다. 쪼그리고 앉은 자세 때문인지 양수가 나왔다고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물에 들어갈 시간이다.


물이 주는 감통 때문인지 잠시 눈을 감았다.

두어 번 진통이 오간다.

산모가 엎드린다.

힘이 들어간다.

밤톨만 한 똥이 물 위로 떠올랐다.

아기 머리가 만져졌다.

힘 조절을 시켰다.


조금씩 조금씩 아기의 머리가 넓게 만져진다. 엄마에게 아기를 만져보라고 했다. 사랑의 손길이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자 이내 아기의 머리가 나왔다. 크지 않아 연속으로 몸도 물속으로 나왔다. 탯줄이 목에, 몸통에 두 번 감겨져 있다. 빠른 손놀림으로 목과 몸에 감은 탯줄을 풀고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겼다. 물에 젖은 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목청 크게 울음을 터트린다.


태반이 자연스레 나오도록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물속에서 태반이 나오는 것은 지금껏 해본 적이 없다. 감염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요구던 못 들어 줄 것 없지만 나의 말을 이해한 그녀는 아기를 안고 탯줄을 매단 채 물에서 나왔다.


침대로 옮겨간 후 오랫동안 엄마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아기는 엄마 곁에 있게 되겠지.

태반이 제 일을 마치자 탱탱하게 혈액을 내보내던 탯줄이 축 늘어졌다. 겸자로 탯줄을 잡는 모습을 보고 내가 탯줄을 자르는 줄 착각한 부부는 아연실색하며 자기가 자른다고 말했다. 물론이다. 아빠나 엄마가 자르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절대로 나는 탯줄을 자르지 않는다. 가끔 무섭다며 내게 탯줄을 잘라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만 빼고...

아빠는 내가 건낸 가위로 셋째의 탯줄을 잘랐다.


허투루 생각하면 탯줄을 누가 자르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은 소소한 것에도 의미를 둘라치면 상상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어떤 과정들은 그들에게는 엄청난 이야기로 남는다.


"아빠가 너의 탯줄을 잘랐단다.

얼마나 건강하고 튼튼했는지 몰라.

사실 아빠도 조금은 떨렸단다.

너의 탯줄을 자르며 아빠가 되는 순간을 느꼈지.

그 감동은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거야.

네가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너는 모를지도...

고마워 아빠가 되게 해 주어서.

우리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꾸나."


그는 아이들의 탯줄을 세 번씩이나 자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에게 탯줄을 자르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탄생의 순간 너를 사랑한다는 첫 고백이었을 수도 있겠다.


태반은 그 후로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미 자궁에서 태반이 떨어졌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기다려야 했다. 물론 출혈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아기를 낳은 지 50분이 지나간다. 황홀한 출산 호르몬에 취해있던 그녀를 깨웠다. 오십분이 지나가고 있다고...

벌써 오십분이나 지나갔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흔쾌히 내 말을 따랐다. 여전히 최대한 자연스럽게 태반을 내보내겠다며 쪼그리고 앉기를 원했다. 그녀의 등에 베개를 높이 받쳐주고 그녀를 앉혔다. 하지만 여전히 탯줄을 살짝 잡아당기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선 설명을 했다. 이미 태반은 다 떨어졌을 것이고 아마 질 안쪽에까지 내려와 있을 것이라고. 살짝만 당기면 바로 나올 수 있다고..

오십분이 지나간 것이 꿈같다는 그녀의 시간은 아기를 만나고부터 멈춰 있었다. 황홀함을 느끼게 하는 엔도르핀 호르몬의 대단한 성과임이 입증된 거다. 설명을 듣고 그녀는 순순히 나의 몸짓을 받아들였다. 태반은 곧바로 나왔고 출혈은  거의 없었다. 일반적으로 나오는 양보다도 적었다.


 태반의 만출은 태맥이 없어진 후에도 자궁의 상처를 잠시 보듬는 일을 한다.

떡 버티고 앉아 흐르는 피를 지혈시키고 있다.


아!

배워도 배워도

경험하고 또 경험해도

끝없이 내게 자연스러움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한다.

아기 낳으러 오는 산모들이 내게 큰 스승인 것이 맞다.

미나는 40년 경력을 가진 63살의 조산사에게 또 한 가지를 가르쳤다.

이제부터는  아기가 태어나고 최소한 삼십분이상 기다려주기로 하기로 한다. 그 시간동안 축하의 말을 건네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것을 도와주고,

따듯한 음료수를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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