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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Dec 14. 2024

신생아실 에피소드1.

신생아실

사월의 꽃봉오리들이 무채색의 겨울에 색을 입힌다. 3월에 병원에 들어와 처음으로 월

급을 받았다.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꽃무늬 원피스를 하나 장만했다.


아이보리색의 좁은 카라에 온통 벚꽃 무늬가 있는 원피스다. 한 달 후 시누 될 사람의 결혼식에도 가야 하니 겸사겸사 거금을 썼다. 몸에 촥 감기는 부드러운 느낌에 마치 내가 봄이 된 것 같았다. 역시 비싼 것은 제값을 하는 법. 한동안 엄마의 눈길은 싸늘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을 해 돈을 벌었다. 한 달 동안 일한 노동의 가치에 비해 턱없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급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왠지 나는 그날이 더 우울했다. 엄마는 봉급 봉투를 뜯지 말고 고스란히 가져오라고 명하셨다. 아버지도 지금껏 그리하셨고 동생도 그랬다. 나라고 별수 없다. 스테이플러로 봉한 노란 돈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침만 흘렸다. 어머니는 당신이 알아서 저축을 하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씁쓸한 건 매한가지였다. 돈을 버는 세명은 어머니의 말을 잘 들었다. 우리는 각자 한 달간 쓸 용돈을 받았다.  내가 사회인이 되고 나서 돈을 벌어보니

가끔 용돈을 더 달라고 투쟁을 벌이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스스로를 우리 집의 내부부장관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께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박봉을 쪼개어 집안 살림

을 유지해온 어머니에겐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든 후 간간이 박봉에 살림을 꾸려가던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 달간 분만실 수련을 마치고 신생아 실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어머니 눈치 보면서 샀던 새 원피스를 입고 출근을 했다.

얇은 원피스를 입기엔 조금 선선한 4월의 날씨였지만 멋부리는데 날씨쯤은 견딜 수 있다. 새벽 공기가 내 마음처럼 맑았고 발걸음도 경쾌하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있는 신생아실은 어떨까. 첫 발을 세상에 내디딘 녀석들이랑 하루 종일 있을 수 있다니, 가슴이 뛰었다.


신생아실은 삼층이다. 계단을 올라 2층 분만실 앞을 지나치려 하는데 방금 아기를

낳은 산모가 들것에 들려 병실이 있는 오층으로 오르고 있다. 층계가 좁아서 출근하는 나는 몸을 벽에 바싹 붙어야만 했다. 산모를 옮기는 아저씨들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내 몸과 닿은 벽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1983년의 산부인과 수련병원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한 달에 거의 삼사백 명의 아기가 태어났으나 그 산모들을 옮기는 아저씨들의 얼굴은 늘 힘차 보였다. 일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기는지 한마디 불평도 들을 수 없었다.

내 곁을 지나치는 산모의 맨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감겨져 있었다. 사람의 몸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어찌 쉬울까. 한 달간 정신없이 분만실 수련을 마친 나는 아기가 태어나는 장면에 슬슬 무감각해지고 있던 터였다.


봄기운과 신생아실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벽에서 뿜어져 나온 한기에 몸서리를 치며 나는 한 층을 더 올라갔다.

신생아실의 문을 열자 유리창 너머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할 수 없는 아기들은 모든 불만을 울음으로 표현한다. 장군의 구령처럼 우렁차게 우는 녀석도 있는 반면 고양이 소리처럼 가늘고 여리게 소리를 내는 아기도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있지만 근무를 해보니 제일 크게 우는 녀석들에게 먼저 뛰어가게 되더라. 가장 크게 우는 아기를 조용히 시키는 것이  신생아실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에게 도대체 무슨 불만들이 저리 많을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일주일 정도 근무를 하고 나서야 조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체로 신생아 수는 70명 전후로 유지되었고 아픈 아기들까지 합하면 거의 80명의  아기들이 있었던 거였다. 중요한 건 아기들을 돌보는 인력이었다. 신생아실 오전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수간호사를 포함하여 총 일곱 명뿐이다. 스텝 한 명은 아픈 아기를 돌보았고 수간호사는 서류들을 정리하느라 스테이션을 떠날 수 없다. 결국 건강한 아기들 68명은 스텝 두 명과 교육생 두 명, 간호조무사 한 명이 돌봐야 한다. 교육생 중 한 명은 바로 나였다. 아기들은 자기를 봐달라고 울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천사 같은 작은 아기들을 만날 생각에 들떴던 마음에 점점 먹구름이 드리웠다. 아기들이 공장의 물건처럼 줄지어 누워있었고 후끈한 공기에 비릿한 젖 냄새와 아기 비누 냄새,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있다. 시큼한 아기똥 냄새도 어딘가에 퍼져있다.  똥 쌌다고, 축축하다고, 배고프다고, 외롭다고 울지만 일손이 부족하니 아기들은 울 수밖에 없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신생아실은 한시도 조용하지 않았다.


인계를 마치기도 전에 아기 한 명이 초록색 수술실 포대기에 싸여 분만실에서 올라왔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분만실에서 첫 공기를 마시고 설렁설렁 양수만 닦은 후 신생아 실로 올라가곤 했다.

바깥세상은 부드럽고 따듯한 자궁 안과는 천양지차인 것을 온몸으로 겪 고 있는 갓난아기는 뻣뻣한 포대기에 싸여 울고 있다. 분만실에서 올라온 간호사는 빠른 속도로 아기 인적 사항을 인계한다. "오늘 대기 산모가 다섯 명이나 있어요. 정신없이 바빠요!" 신생아실 간호사가 아기를 건네받았다. 교대도 하기 전에 아기 목욕부터 시켜야 했다. 교육생인 내게 함께 가서 아기 목욕하는 것을 관찰하라고 했다. 배움엔 순서가 없다. 그날그날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날마다 같은 일이 일어나는 듯 보이지만 모두 다 다르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는 것이 내겐 배움이었다.


목욕을 하는 아기는 물에 들어가자 더욱 길길이 운다. 울음소리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지만 내 어깨는 한층 더 올라가 있다. 울지 마라 아기야, 이제 곧 괜찮아질 거야. 그런 조바심은 아랑곳 없이 신생아실 간호사의 손은 초고속으로 움직인다. 아기 머리카락에 엉겨 묻어있는 피와 끈끈한 것들을 떼어내고 얼굴과 목, 겨드랑이, 다리를 문지른 후 훌러덩 아기를 뒤집어 등을 닦고선 목욕을 마쳤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온 아기가 기형이나 이상한 점이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배꼽에 파란 G.V(gentian violet: 소독약의 일종으로 잉크색을 띤다)를 바르고 눈에 안연고도 넣었다. 기저귀를 찬 후 꽁꽁 번데기처럼 속싸개로 싼 후 7:3 가르마를 탔다. 정신없이 울어 대던 아기의 울음은 이쯤에서 조용해졌다. 아기의 손목과 발목에 있는 이름표와 아기 바구니 머리맡과 바구니 아래쪽에 있는 차트의 이름이 같은 지 4번을 확인을 하고서야 아기는 바구니에 누웠다. 조용해진 신생아실 끝에서 살짝  실눈을 뜨고 보니 하얀 속싸개에 곱게 둘러싸여 누운 아기들의 모습이 마치 커다란 벚꽃 꽃망울처럼 일렁였다. 너희들의 인생이 꽃망울 터지듯 화려히 빛나기를, 불편하거나 화가 나면 지금처럼 아우성을 치는 용기를 내기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 차리라고 중얼거렸다.


오른쪽 두 번째 줄에 누워있는 녀석이 꼬물거린다. 그냥 두었다가는 영락 없이 울 것이다. 달려가 기저귀를 보니 노란 황금똥을 엉덩이에 범벅이 되도록 싸놓았다."그래, 그랬구나, 똥을 쌌구나, 말을 하지 그랬어, '똥 쌌어요'라고"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말이 맞다. 어머니가 아닌 나도 말 못 하는 아기에게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는 걸 보면. 엉덩이가 북송해지자 아기가 날 향해 웃는 것 같았다.

나도 점점 거짓말쟁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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