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끄적
아버지 모시고 이비인후과 가는 길, 하필 비가 온다.
보통의 날이었으면 보슬보슬 비가 온다고 했을거다.
비 오는 날을 위한 병원의 친절은 비에 씻겨 나갔다.
쫄딱 비를 맞으며 걷지 못하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혔다. 척추서 느껴지는 가벼움이 내리는 비처럼 서글프다.
아무리 잰 걸음을 걸어도 내 무게를 더한 아버지의 무게는 바위처럼 다가온다.
숱 적어진 머릿속으로 '또똑' 비가 떨어졌다.
나보다 머리카락이 적은 아버지의 머릿속으로는 '후드득 후드득'비가 적신다.
아버지를 다시 요양병원으로 보내드리고 돌아오는 길,
우산은 있지만
차에 두고 와서,
가지러 가기 귀찮아서,
작은 비라서,
비라도 맞으면 미안함이 덜 할 거 같아서
그냥 맞았다.
구름 산책 책방 가는 오후,
비가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달리는 차가 붕 뜨기도 하고
큰 차가 지나가면 앞 유리창은 폭포가 된다.
글쓰기 수업에 듬뿍 물을 주고 싶다.
객기를 장착하고 우산을 두고 내린다.
외려 짧은 거리는 후다닥 지나가고,
우습게도 긴 거리는 천천히 걷는다.
청개구리 심보는 나이와는 상관없다.
원피스가 비에 젖어 짙어지고
물방울은 머릿속에서 굴러다닌다.
비에 실린 슬픔이 어딘가로 낙하하는
비 오는 날
이래저래 비 맞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