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의 진심 한 마디

Day 9. 그저 사랑이면 되는데

by 반짝이는 루작가

내가 승무원을 그만두기 전 아빠가 장거리 여행을 다녀오신 적이 있었다. 귀하게 들어간 회사를 1년 만에 멀미로 그만두겠다 하니 부모님도 착잡하셨을 즈음이었다. 그러나 원래도 멀미가 심했던 나는 아무리 여러 번의 비행을 하고, 멀미약이며 편강이며 배꼽 위에 파스 붙이기며 별의별 방법을 다 시도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서비스를 하다 말고 이코노미석 화장실이 꽉 차 맨 앞 퍼스트클래스 화장실까지 가서 토를 한 적이 있었을까. 힘들다고 하면 취준생이었던 친구들은 좋은 직장 들어가 투정만 부리는 철없는 아이로 바라볼 뿐이었다. 빛 좋은 개살구로 살면서 나의 어려움을 이해받지 못하던 시절. 혼자 원룸에 틀어박혀 불을 끄고 누워 이 어둠 속에 그냥 같이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내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아빠가 긴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에서 공항철도를 탔는데 맞은편에 승무원이 앉았더란다. 코트로 유니폼은 다 가렸는데 딱 봐도 승무원인 그녀의 모습에서 내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아마 그분도 장거리 비행을 갔다 온 것처럼 매우 지쳐 보였다고. 검암역에서 내려 쓸쓸히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그 뒤의 행동들을 상상해 봤다고 하셨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홀로 캐리어의 짐들을 정리하고, 옷들을 빨고 널고, 씻고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힘들게 일을 하고 왔는데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이 없어 외로울 그녀를 생각하니 참 안쓰러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은 있으니 언제든지 네가 힘들면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하셨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오늘 나는 홀로 집으로 돌아간 엄마의 뒤를 상상하며 눈물의 설거지를 했다. 친정엄마와의 불편한 관계로 요새 계속 끙끙하고 있던 중의 일이다.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모처럼 동네 산책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탑동광장으로 갔다. 엄마도 같이 가시겠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엄마. 어차피 처음부터 내 계획에 있던 플랜이라 좋고 싫은 감정 없이 그러려니 하고 집을 나섰다.


차를 타는데 엄마도 같이 가시기에 내가 아이들 카시트 사이로 낑겨 앉았다. 그 모습을 보시고선 "에고, 나 때문에 민경이가 불편하게 가겠구나"하며 혼잣말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예전 같으면 "내가 뒤에 앉아도 되는데!" 하는 식의 말투였을텐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뭐랄까, 내가 그동안 엄마의 기를 죽여놓은 것 같은, 내 눈치를 엄청 보시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각이었으나 아이고 어른이고 사람으로 꽉 차있었다. 노을빛이 얼마나 환상이었는지, 붉은 조명이 우리를 환하게 비춰주는 것 같았다. 남편은 쌩쌩 자전거 페달을 밟는 첫째를 따라 달리고 그 뒤를 둘째 자전거를 끌어주며 엄마와 함께 걸었다. '이 타이밍일까, 지금 말해야 할까.' 그동안의 불편했던 마음을 엄마에게 말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바닷속으로 내려앉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러고도 한참 하늘에 빛을 퍼뜨리는 에너지에 감탄하며 길을 걸었다.



옅어지는 붉은빛 사이를 짙게 드리우는 어둠에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새 배가 고파진 아이들의 허기를 채우고자 근처 카페에 앉아 달달한 크로플과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나왔다. 하늘 위에 날렵한 선을 이룬 눈썹달이 예쁘게 웃으며 '나 여기 있어' 하는 것 같았다.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우리와 헤어지며 엄마가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얘들아, 오늘 너희들 덕분에 할머니가 멋진 풍경도 보고, 카페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집에 와 남편이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나는 설거지통에 놓고 간 그릇들을 씻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외로이 컴컴한 집에 혼자 불을 켜며 씻고 잘 준비를 할 엄마가 짠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지금 기분이 마냥 좋으실까, 아니면 한편에 허전함이 있으실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마음을 채워드리지는 못할망정 더 긁어내고 떼어내버리려 했던 나의 차가운 모습들이 떠올랐다.


엄마를 그냥 사랑해 드리면 되는데. 또 나는 이렇게 착한 아이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는 장녀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 그 삶에서 꼭 나를 나쁜 아이로 만들며 독립을 해야 하는 걸까. 엄마를 여집합이 아닌 부분집합으로 품어 살아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 독서로 둘째가 골라온 책을 읽어주는데 광장에서 본 풍경과 나의 마음이 오버랩되었다. 마치 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책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사랑과 서로의 품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의 품이 분명 있었을 거다. 비록 성장과정에서 엄마 또한 여러 상처들을 받으며 내게 직접적인 품을 내어주진 못했지만 엄마만의 방식으로 나를 품어주셨던 것을 잊고 있었다.


엄마가 이집저집 밤마다 식당을 다니며 수금하셔야 했던 것도 나를 위한 사랑이었을 거고, 워킹맘으로 사시면서도 단 한번 아침을 빠트리지 않고 챙겨주셨던 식사도 나를 위한 정성이셨다. 퇴직하고 치킨집을 오픈하시며 돈이 벌릴 때마다 내게 현금으로든 물질로든 더 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 그러나 그 가게를 정리하면서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그 마음까지도. 그래서 어쩌면 더 우리 곁에 있으면서 집안일이든 요리든 어떻게든 엄마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부드럽고 다정하지 않았지만 나와 동생을 위해 챙기는 엄마의 진심은, 손주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은 한결같았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착한 장녀로 살아온 것은 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나의 성향이고 기질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께 분명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이상으로 돌봄을 받고 있었다. 스스로 병이라는 굴레에 가두어 부모님을 원망하던 삶에서 이제는 해방을 선언한다. 나는 그저 가족과 이웃들에게 선함을 베풀며 살고 싶은 민경이고 루씨일 뿐이다. 드디어 그동안 꽉 묶여있던 매듭이 풀어졌다. 이제 나는 자유롭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