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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표 콩국수

Day 8. 아빠가 직접 만들어주신 음식

by 반짝이는 루작가

안타깝게도 콩국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벼르고 벼르다 만들어주신 아빠표 콩국수였다. 돈 주고 사 먹는 게 너무 아깝다며, 집에서 뚝딱 할 수 있는 레시피도 문자로 보내주실 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 동생이 하는 식당에 선보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신 것 같아 먼저 우리 집으로 오셔서 요리를 해달라 부탁드렸다. 흔쾌히 오케이를 하신 아빠:)


재료를 직접 다 적어 마트에서 사 오시고는 직접 면을 삶으셨다. 우리 집 주방에 계신 아빠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행복했다. (아빠의 요리하시는 모습을 찍어둘 걸, 이 또한 많이 아쉽다 ㅠㅠ) 둘째가 아빠옆에 의자를 끌고 올라가 달라붙어 “그랜파, 이건 뭐야? 뜨거워?”하며 쫑알쫑알 물어보고 질문에 성의껏 대답해 주시는 아빠의 모습이 다정했다.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엄마가 처음으로 외박을 하시고 출장을 가야 했던 날이 생각났다. 엄마가 일 때문에 집에 안 계실 거니 우리끼리 하루를 잘 지내보자는 아빠의 선포가 비장하게 느껴졌었다. 저녁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다음날 아침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아빠는 새벽부터 일어나 찬밥으로 해야 맛있다며 그릇에 밥을 미리 떠놓고 준비해 둔 재료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셨다. 엄마가 안 계셔도 든든히 아침을 챙겨주시려던 아빠의 정성이 오늘 점심과 오버랩되었다.


그 사이 아빠는, (순간 변한 걸 찾아보려 했지만 여전히 패션 센스도 좋으시고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계신다) 딸과 아들뿐이었던 식탁에 사위와 손주들 둘이 더 늘어난 것 말고는 나를 향한 마음도, 사랑도 변함이 없으시다.


비록 맛은, 이걸 식당에서 팔면 손님들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두유맛이 강한 콩국수였지만, 정말 맛있게 먹어드렸다. (사위만 ㅎㅎ) 그래도 둘째가 그랜파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첫째도 거의 한 그릇을 비워냈다. 뿌듯했을 우리 아빠, 아빠가 내 아빠여서 나는 너무 좋다. 난 그냥 이렇게 아빠의 내리사랑을 받으며 자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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