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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Day 7. 나를 위한 꿀잠

by 반짝이는 루작가

아이들 어린이집 방학이 곧 찾아온다. 그와 함께 마법까지 찾아올 예정이다. 내가 참으로 피하고 싶은 PMS기간을 보내는 요즘, 단 이틀만이라도 찐하게 휴식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 중이다.


아이들을 아침에 어린이집 버스로 태워 보내고 바로 이비인후과에 갔다. 3일 전부터 목이 따끔따끔, 그동안의 긴장이 다 풀려버린 걸까. 아이들 방학 시기에 아프면 안 된다며 결국 진료를 받기로 했다. 다행히 심하지 않았고 감기 기운이라기보다 알러지성인 것 같다는 말씀에 마음을 놓았다.


집에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밖에 나갈 때도 그리 불편한 옷을 입는 것도 아니면서 집에 오면 매우 편한 복장을 고수한다. (매력적이지 못해 남편에게 조금 미안함..ㅎㅎ) 나를 조이고 있었던 것부터 탈의를 시작하고 갈중이(제주 갈옷) 바지로 갈아입는다. 결혼하고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출산 후부터인 것 같다. 이 맛에 빠지니 추운 날을 빼고는 사시사철 즐겨 입는, 가족보다도 더 붙어지내는 갈중이다.


갈옷 가게에서 파는 고급 바지도 있겠지만, 내 것은 다르다. 상이 났을 때 가족들이 입는 통이 넓은 하얀 바지. 장례가 끝나고 나면 그 바지들을 이모와 숙모들은 감물을 들여 이렇게 갈바지로 변신시키셨다. 촌에 가보면 여름마다 이 바지를 입고 다니는 분들이 아주 많다. 다른 얘기긴 하지만 갑자기 알림으로 울린 실종신고 메시지에도 착용하고 있던 어르신의 옷이 갈중이었으니까. 몸에도 안 달라붙고 얼마나 시원하고 편한지. 너무 제주 아줌마스럽지만 뭐, 나를 제주 토박이 아주망으로 인정하면 그만이다. (ㅎㅎ)


오전에 영화 <원더> 리뷰 쓰던 걸 마무리하니 11시가 넘었다. 간식을 먹어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고, 요새 매일 글을 쓰니 머리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천근만근 몸도 무거웠다. 제일 시원한 요가 깔려 있는 아이들 자리로 가 누웠다. 평소에 낮잠을 잘 때는 시간에 쫓기며 15분-20분으로 맞췄었다. 눈 한번 감고 일어나면 끝인 낮잠이 단잠이었지만 얼마나 아쉬웠던지.


오늘은 넉넉히 1시간 뒤로 알람을 맞추어 누웠다. 둘째의 폭신한 애착인형인 꿀빵이를 내 머리 아래에 두고 포근한 이불을 무릎 사이에 끼워 옆으로 돌았다. 이렇게 꿀잠 자는 모습을 남편이 캠으로 보고 있었다면 좀 미안하긴 했지만, 너무 편했다. 꿈도 하나 꾸지 않고 무의식에 침만 닦은 기억이 날 뿐이다. 짧게 잠을 잘 때는 침 흘릴 여유조차 없었음을.


알람이 울렸을 때에도 벌떡 일어나지 않고 조금 더 누워 뒹굴뒹굴 일어날 준비를 했다. 아- 좋았다, 뒹굴거리는 삶. 이렇게 좀 굴러야 나도 둥그런 사람이 됐을 텐데 그동안 너무 각 잡고 살아왔다. 휴대폰을 보니 자면서 꽤 움직였는지 카메라의 알림 표시가 여럿 있었다. 5년이 넘게 고장 한번 없었던 기특한 캠이 나의 모습도 담아주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아이들도 방학 시작이라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이 시간들조차 꿈을 꾼 것처럼 행복한 날들이었음을 깨닫는 날이 오겠지. 길고 긴 겨울잠이 아닌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빠르게 지나가 있겠지. 아이들이 흘린 침 자국을 바라보는 시간도, 튀기는 침을 맞으며 이야기할 시간도 그리워질 소중한 나의 육아, 즐기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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