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 더욱 나를 비워내야 하는 시간
새벽 3시 38분. 변기에 앉는 게 두려웠다. 대장내시경을 하루 앞둔 사람처럼 오늘도 항문에서 덩어리가 아닌 액체가 나올 것 같았다.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한 지 2주가 다 되어 간다. 양약이 나와 너무 안 맞아(꼭 어딘가로 부작용이 나타남) 1주는 그냥 버텼고, 1주는 한의원 치료를 다니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주에 때도 밀고 뭉친 근육들을 풀어보겠다며 목욕탕에서 세신을 받은 게 탈이 났다. 세포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하나도 빠짐없이 피부 위로 올라왔다. 오돌토돌한 자갈밭을 만들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평소 환공포증이 있어 수박을 반으로 쪼갰을 때 수박씨가 다닥다닥 박힌 것도 소름 돋아하는 나다. 그러나 살아보겠다고 나타난 새빨간 점들에게 열심히 크림을 발라주었다. '괜찮아, 제발 들어가라' 주문을 외우면서.
나를 위한 틈을 만들고 정성껏 돌보겠다고 다짐하며 100일 글쓰기를 실천 중이다. 그중 11개의 글을 썼다. 예전보다 훨씬 내려놓고 지낸다 생각했는데, 내 몸은 현재 목과 어깨, 허리통증을 시작으로 뭐를 잘못 먹은 건지 설사까지 동반되었다. 특히 오른쪽 어깨가 아파 뒤에서 아이들이 "엄마!"하고 부르면 휙휙 돌아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고, 장난감 하나 줍는 것도 허리에 무리가 갔다.
그러던 중 마침 사촌동생도 휴가를 받아 함께 아침 사우나를 즐기자는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피부까지 뒤집어진 것이다. 삶의 질이 팍팍 떨어졌다. 목과 다리가 너무 가려워 가시밭에 누워 박박 다리를 비벼대고 싶었다. 아토피 환자들은 어떻게 견디며 지낼지, 약을 먹고 크림을 발라도 나아지지 않는 3일이 미칠 것 같았다. 어제 새벽은 이 괴로움으로 자꾸 잠에서 깼다. 목에서는 진물이 나는 것 같았고, 일어나니 손톱 사이사이에 때인지 각질인지 모를 것들이 껴있었다. 무의식 중에 내 몸을 긁어댄 흔적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이들을 등원시키자마자 병원으로 가 주사를 맞았다. 약도 더 세게 처방받았다. 피부과 약이 독하다고들 하지만, 양약이 나와 맞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든 하나는 가라앉게 해야 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신기하게 슬슬 목과 어깨통증이 사라졌다. 다른 통증이 너무 세서 사라진 건지, 피부과 약이 그쪽으로 맞아떨어진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니, 이젠 좀 나을 때가 된 거겠지. 고개를 돌리는 게 뻐근은 했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피부도 주사를 맞고 약을 추가로 복용하니 쑤욱 들어가는 것 같았다. 긁지만 않아도 삶의 질은 훨씬 나아졌다.
문제는 설사인데 약을 더 세게 처방받으니 걱정이 되었다. 평소에도 항생제와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성분의 약을 먹으면 설사를 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의원에서 나의 상황들을 알고 약을 바꿔 주셨다. 그러나 밤부터 배가 살살 아프더니 새벽에 결국 배 속에서 구룩구룩 요동치는 소리가 느껴졌다. 변이 물처럼 나오는 느낌이 너무 싫고 무서웠지만 다시 변기에 앉았다. 완전 설사일 거라 예상했으나 다행히 아주 조금은 묽은 변이었다.
이 정도에 감사하며 따뜻한 물주머니를 배 위에 올려놓고 글을 쓴다. 불행을 나열해 놓은 것 같지만, 오직 나의 기록을 위해 쓴다. 이 덕에 나는 진정 내려놓는 것이 무엇인지 연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방학이 끝나 출근하기 전까지 세워놓은 플랜들이 있었다. 영어스토리텔링 지도사 자격증도 따고 싶었고, 그동안 못했던 오전 요가를 매일 나가며 체력을 키우고 싶었다. 책도 많이 읽고 싶었고, 미술관 같은 곳도 혼자 거닐며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More였다. 나를 돌보겠다는 틈이 나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무언가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완벽하게 Less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었구나.
Less의 시간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피부가 이러니 몸이 더워지면 안 돼 운동도 올스톱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해야지' 했던 계획과 다짐을 온전히 내려놓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쉬자'의 마음으로 미루고 있다. 내일은 이런 글을 써야지, 이번 주는 뭐를 마쳐야지 하며 완벽한 J로 살던 삶에서 나와 세상을 바라본다. 어느 날 저녁, 노을 지는 하늘을 보며 다 돌아간 빨랫감을 탁탁 터는데 그냥 이런 게 삶인 것 같았다. 세탁을 끝냈다는 멜로디가 들리면 빨래를 꺼내고, 털고, 널고. 흐름 안에서 편안하게 흘러가는 삶. 아무것도 늦은 건 없으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고 나를 위로했다.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무렇게나 산다는 뜻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