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하기, ‘지금 여기’서 악습을 끊기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기 주관도 세지는 네 살. 둘째를 받아주는 것만큼 첫째를 받아줬으면 이 나이에 첫째에게 틱이 오지 않았을 거란 자책을 할 만큼 나는 첫째에게 매우 엄격했다. 감정조절도 제대로 못했고 소리치고 화내고.. 그 당시 물애기인 동생이 있었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둘째가 네 살이 되었을 때는 달랐다. 형아가 여섯 살이니 육아가 수월해지고 있었고 첫째는 원칙주의에 바른생활 사나이라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결국 둘째만 케어하면 되었기에 징징거리고 떼쓰는 것을 귀엽게 받아줬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욱하는 감정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러나 자만금지. 요 며칠 나는 아침마다 밤마다 둘째에게 큰소리로 정색하며 아이를 잡고 말았다.
“오냐오냐 다 받아주니까 끝도 없이 기어오르려고! 너만 소리칠 수 있는 줄 알아?!! 어디 버릇없이 짜증 내고 떼 부리는 거야!!!”
각각 벌어지는 상황들에 이 문장을 다 갖다 댔다. 아이는 오랜만에 극도로 무서운 내 모습에 동공이 흔들렸고, “울 거면 방에 들어가서 울어!!!!” 하는 말에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이럴 때면 자꾸 용호상박이 떠오른다. 엄마와도 그래서 내가 안 맞나 싶었는데 둘째 녀석도 호랭이다. 개구진 짓을 하려고 할 때마다 위험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면 받아줬었는데, 아이는 갑자기 돌변한 내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어젯밤에는 첫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녁도 안 먹고 잤다. 하원 후 씻자마자 배가 아프다며 이불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열이 안 나 다행이었지만 혹시라도 형을 깨울까 봐 둘째를 조용조용히 시켰다. 둘째와 놀아주다 잠을 자려는데 물 마시고 싶다, 쉬 마렵다(나오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나를 훈련시키던지.
오늘 하루 너에게 소리 지른 것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면서 결국 또 정색을 하고 말았다. 첫째가 깰 염려를 안 했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텐데, 쉽고 빠르게 자고 싶은 내 욕망 때문이었으리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둘째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으며 이불에 쉬 안 하려고 노력한 그의 마음을 읽어주는데 내가 너무 이중인격 엄마 같았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를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입장을 바꿔보니 최악이다 정말.
결국 둘째는 불안했는지 열심히 배꼽을 만지다 잠이 들었다. <내면소통>을 읽고 실천해 보려던 ‘지금, 여기’의 훈련을, 악습을 끊는 데도 이용해야겠다. 소리치며 나를 불안하게 했던 엄마의 모습을 ’지금, 여기‘에서 나는 끊어내야 한다. 고성이 아닌 단호한 목소리로. 두 눈이 치켜 올라간 화났어의 표정보다 내가 바른 행동을 알려줄게의 웃음기 없지만 사랑은 읽을 수 있는 표정으로. 쉽지 않겠지만 계속해서 노력하자. 원래 좋은 습관을 만드는 건 어려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