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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루작가 Aug 24. 2024

엄마께 전하지 못하는 편지

엄마, 나의 속 마음은..


졸꾸머끄 백일장에 쓸 글을 준비하며 그동안 여행한 사진들을 찾아본다. 원래는 서울, 파리, 부다페스트에서 탔던 유람선을 떠올리며 선상에서 바라보는 세상 풍경을 쓰고 싶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은은하게 반짝이는 풍경들.



그러나 천진난만하게 웃는 엄마의 사진이 보였다. '엄마.' 나에게 요즘 고해성사거리인 엄마. 그저 엄마의 착한 딸이려고 했던 나는 요즘 왜 이렇게 쌈닭이 되어 엄마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건지. 왜 이렇게 박박해 졌을까. 돌아서면 반성하고 마주하면 덤벼드는 나를 반성하며 엄마에게 전하지 못할 편지를 써본다.




랑하는 엄마. 


엄마와의 여행을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엄마의 모습이 있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길, 가이드가 틀어준 에델바이스를 아주 정확하게 따라 부르는 엄마의 흥얼거림에 나도 설렜어. 


이렇게 행복해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영상도 찍었더랬지. 이 기쁨을 느끼기 위해 이제까지 힘든 일 서러운 일 다 참아가며 엄마가 우리를 키워왔을까. 웃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스위스 공기가 너-무 맑다고 좋아하던 엄마가 생각나. 우리 왜 그날 방은 두 개면서도 셋이 한방에서 잤더라? 너무 더웠는데도 에어컨을 틀면 위법이라 선풍기에만 의지해야 했던 우리.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자연을 사랑하고 지키려 하는 스위스의 모습에 감동했었지.


아, 소녀 같은 우리 엄마! 그때는 자연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는 아름다움을 잘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엄마가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아직 엄마의 나이가 되지 않았지만 5년 전 이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엄마.



파리에서 거리마다 울리는 누군가의 노래를 들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발걸음을 멈추던 우리였지. 엄마, 나는 이 때도 엄마가 노래를 이렇게나 좋아하고 또 많이 아는 사람인 줄 몰랐어. 육아하며 엄마랑 계속 붙어있다 보니 클래식방송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대부분 알고 있는 엄마를 다시 봤어.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엄마에게서 온 것을 이제야 알게 돼. 그동안은 엄마에게 노래를 부르고 들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걸까. 엄마, 왜 나는 엄마가 이렇게 똑똑하신 분인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거지?



엄마랑 이렇게 둘이 찍은 사진은 많은데 둘만 다닌 여행은 없었네. 그런데 엄마, 나 사실 엄마랑 단둘이 모녀여행은 아직 자신이 없다. 내가 엄마랑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며 나에게 하소연하는 것도 들어줄 자신이 없고. 나의 꿈과 미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얘기할 용기가 없는 것 같아. 엄마랑 아빠가 자주 화내고 싸우며 공포에 떨던 어린 루씨의 기억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아서. 엄마는 내 꿈을 진지하게 생각해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운 마음 때문에 말을 못 하겠어. 엄마한테 이제 과거는 묻어두고 지금을 즐겁게 사시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엄마가 아니기에 이런 조언 자체가 엄마에게 폭력이 될까 봐. 그 가운데에서 또 상대의 마음을 살피며 줄타기하는 내가, 불안해하는 내 마음이 불쌍해서 아예 아무 얘기도 나누고 싶지 않은 것 같아.


꽃보다 예쁜 우리 엄마였는데, 지금도 예쁜 우리 엄만데 나는 왜 그 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지. 매일 엄마한테 화만 내고 다그치고 무시하고. 엄마 너무 미안해. 엄마보다 내가 우위에 있는 것처럼 불효막대하고, 전화통화도 세상 급하고 차갑게 대하는 싸가지 없는 딸. 선하게 웃는 얼굴 속에 숨어있는.. 엄마 앞에서만 나오는 악마의 마스크를 언제면 벗어던질 수 있을까. "아우!!!!! 진짜 안 맞아!!!!!!" 하면서도 돌아서면 매일 반성해 엄마. 이 시간이 마지막이면 어쩌지 생각하며 엄마한테 잘하자 다짐하면서도 나란 사람 왜 이래 정말. 왜 자꾸 승질이야.


더 거슬러 올라가니 엄마와 동생이랑 함께했던 일본 여행, 아빠와의 홍콩여행이 보인다. 엄마, 나 이 때도 얼마나 아빠엄마 사이에서 눈치 보며 다녔는지 알지?! 그래도 저 때는 젊은 피라 괜찮았나 봐. 이제는.. 두 분 사이에서 나도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야. (ㅎㅎ)


10년이나 더 지난 2012년의 여행. 엄마 나이 겨우 50이 넘은 때였네. 저 때는 그저 엄마였기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가 얼마나 젊은 나이였는지! 엄마는 하고 싶은 게 오죽 많았을까,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젊은 날을 보상해 줄 중년, 노년의 삶은 어떻게 꾸려질까. 나는 엄마를 위해, 엄마도 엄마 스스로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아, 우리 엄마 이제는 정말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엄마. 얼마 전에도 내가 엄마한테 상처 줬잖아. 엄마가 자꾸 내 말을 잊어버리고 내가 한 말을 도로 묻기에 성질을 확 냈더니, 엄마가 치매가 오는 것 같다고. 그런데 내가 거기다 "치매 오면 누가 돌봐줄 건데!!! 엄마가 알아서 잘 챙겨!!!" 훅 던져놓곤 이건 아니다 싶어 몇 시간 뒤에 사과했던 일. 그래도 웃으며 허허 받아주는 엄마. 왜 이렇게 예민하고 못된 딸을 낳아서 엄마는 이 나이가 되어도 상처만 받는 거야. 


엄마. 그런데 나 사실은 엄마 옆에 꼭 있을 거야. 나도 엄마를 사랑하는 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할 거야. 엄마가 어디에 있든 길을 잃든 내가 늘 곁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 내 곁에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게 있어주기를, 또 내가 우리 아이들 곁에 건강히 있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해. 


엄마! 아이들 조금만 더 키워놓고 그땐 나랑 꼭 단둘이 여행 가자. 세월이 흘러 그땐 내가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엄마를 안아줄 품이 커질 거라 믿을래.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지금을 살아가기로 약속! 아직도 엄마께 사랑한다 얘기하라는 고해성사의 보속을 행하지 못했지만 내 마음 알지 엄마? 사랑하고 또 사랑해 소중한 우리 엄마.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마워 진심으로. 




언젠가 한 번 써보고 싶던 엄마에 관한 글을 졸꾸머끄 백일장 덕분에 쓸 수 있었다. 요즘 정말 엄마에게 못된 행동만 골라하는 딸이었기 때문이다. 글로 풀어내면 내 마음이 가벼워질까 싶었다. 역시는 역시.


여행의 추억을 회상하며 엄마를 다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모녀여행이 즐거울 거라 확신하며 언젠가 떠날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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