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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루작가 Oct 24. 2024

낙선했지만 낙심하지 말 것

제42회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후기

'장원급제기원'. 센스만점 남편의 입금자명에 다부진 표정으로 응답하며 10월 8일, 나는 작심하고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났다. 10월 공모전 달력을 살펴보던 중 눈에 들어온 '제42회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약간의 멀미 기운이 올라왔으나 김포공항에 내리니 조금 괜찮았다. 원래대로 택시를 탔으면 괜찮았을까. 시간이 조금 널널해 버스를 탔는데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살은 덥게 느껴지고 사람들은 많아 답답했다. 

조금은 멍한 상태로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도착한 서울은 미세먼지가 자욱했지만, 점점 맑은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멀리 천막이 보이고 거기에 오늘의 주제가 나와 있었다. 내가 상상한 백일장은 징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하늘에서 과거시험 시제가 촤르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박하게 접수대 종이 위에 글제가 쓰여있었다. 



'기다림, 지우개, 뜨개질, 공연'.


날씨가 좋아 야외에도 삼삼오오 모여 글을 쓰는 풍경이 보였다. 나는 접수증과 원고지, 간식을 받고 글쓰기에 익숙한 곳을 찾아 카페로 들어갔다. 이번 백일장은 글쓰기 수업을 같이 받는 동기 언니와 함께 참여했다. 누군가와 이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로 큰 힘이 되었다. 비록 언니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짧게 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글쓰기를 시작했다.


도저히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기다림'을 주제로 잡고 아이를 기다리며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바라던 시간에 대해 썼다. 그 두 줄이 두려운 여성의 상반된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시간에 쫓겨 퇴고하던 중 얼마나 비 오듯 땀은 떨어지고 손은 바들바들 떨리던지. 


산문은 분량이 원고지 20장 내외였는데 겨우 15장을 채우고 제출했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식은땀을 여유롭게 닦으며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반응할 수 있었다. 반갑게 동기 언니를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사서고생한 백일장을 위로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우리의 글쓰기를 응원했다.  



5시부터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봄 같은 오후에 참가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시상식을 기다렸다. 무대 위로 보이던 가을하늘이 참 예뻤다. 산문 부문 심사평을 할 때 귀를 쫑긋 세워 들었다. 245편이나 되는 산문 중 9편만 고르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저 멀리 제주에서도 오신 분이 계셨다고 하는 말에 나를 지칭하는 건 아닌지 뿌듯했다. 이렇게라도 나를 생각해주니 감사했다. 그 뒤로 나의 이름은 전혀 불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낙선임에도 좋은 글이 많았다고 절대 낙담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직 새싹이다, 이제야 시작하는 글쓰기이니 중년이 되면 달라질 것이다’ 위로했지만 울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고단한 하루의 끝에 '브런치 스토리 <작가의 여정> 팝업 전시회'를 방문했다. 입구에서 내가 브런치 작가로 등록돼있음을 말씀드렸다. 스탭분들이 백일장에 떨어진 나를 위로하듯 "작가님, 작가님!" 하며 나를 불러주시는 호칭이 낯설었지만 행복했다. 많은 작가가 각자의 길에서 부단히 글을 쓰며 본인만의 인생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읽고 쓰는 삶을 지켜가자고 다짐해본다. 그러면 10년 뒤 오늘의 나를 떠올리며 토닥일 수 있는 여유와 품은 커져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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