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그들의 이야기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접하며 식견을 넓히다 보면(물론 나의 식견은 아직도 좁다고 느낀다), 공연, 문학, 미술, 음악계를 주름잡는 여러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퀴어 당사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은 아픔을 먹고 자라기에, 세상에서 쉽게 조롱받고 무시당하는 퀴어들은 예술의 힘으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퀴어 예술인들이 겪은 고난은 뛰어난 작품을 창조해내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는 그들이 당당히 자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식이 되었다.
<퀴어리즘>은 이와 같은 퀴어 예술인들의 숨겨진 일화를 소개하며,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를 집어삼킬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췄던 화가들의 이면을 들추어낸다. 미술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흔히 들어보았을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프리다 칼로 등의 굵직한 예술가들이 실은 퀴어였다는 사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사실 이러한 도서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예술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창조해낸 예술가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저자는 제목에서부터 ‘퀴어’를 당당히 언급하며 그들의 존재를 조명하는 책을 만들어냈고, 이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한편으로는 지금껏 눈부실 정도로 빠른 문화적 성취를 이루어낸 우리나라에서 ‘퀴어 미술사’를 제대로 다룬 도서가 이제야 나왔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또한, 다소 자극적인 단어 선택을 통해 퀴어를 대상화하는 듯한 저자의 서술 방식에 의아함을 느꼈다.
퀴어 예술인이 유성애 및 이성애 중심 사회의 ‘마이너리티’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책의 구성이 과연 그들의 존엄을 지키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다. 물론 저자의 미학적 소견을 역사적 사실 위에 덧대는 것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필수적이겠지만, 성소수자의 고충을 단순한 가십거리로 활용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어체적 서술에서는 배려심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저자가 방관의 벽을 넘어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퀴어 예술인의 일화를 속속들이 조사하여 주류로 이끄는 역할을 해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퀴어 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 또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사회의 주류에서 활동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세상에 만연한 폭력을 넘어 퀴어의 진실과 진심을 전달하는 행위는 꼭 필요하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다빈치의 <모나리자> 안에는 레오나르도 자신이 들어있는 셈이고, 마르셀 뒤샹이 수염을 그린 <모나리자>에는 뒤샹의 영혼이 들어간 것과 다름없다. 호크니가 그려낸 수영장 그림에서는 그가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분투한 과정이 담겨있고, 키스 해링의 작품에서는 그의 순수성과 반항아 기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퀴어리즘>은 이렇듯 예술품 안에 있는 예술가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돕는다. 독자는 자신이 즐겨 감상했던 예술품의 이면에 퀴어 정체성이 듬뿍 숨겨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군가는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위대한 작품은 변치 않은 채로 자리한다. 자신을 배신한 것은 결국 낡아빠진 관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가르고 갈라도 또 나누어 계급을 정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퀴어로 분류된 이들이 느끼는 부당함은 다른 예시로도 쉽게 치환할 수 있다. 가진 이와 없는 이,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남자와 여자, 늙음과 젊음 등. 퀴어 예술인의 신화가 영웅적인 면모를 갖는 것은 많은 계단을 올라야만 했던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소외된 이들이 이곳저곳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외가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퀴어리즘>은 예술 속에서 ‘소외된 개인’에 집중한다. 그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선언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이 책을 기점으로 ‘퀴어’와 ‘예술’의 지속적인 양립을 응원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를 통하여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