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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기 Nov 17. 2023

순수하게, 거침없이 - 에르베 튈레展 [전시]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르베 튈레展, 색색깔깔 뮤지엄>을 관람하고 왔다. 본 전시는 2023년 11월 3일부터 2024년 3월 3일까지 열린다.

에르베 튈레는 프랑스 출신 창의 예술가로, 어린이를 위한 미술 교육과 그림책 출간 사업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창작 과정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작업하거나, 일반인과 함께하는 단체 워크숍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등 독창적이면서도 색다른 방식으로 작업에 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술 작가로서의 활동과 더불어, 에르베 튈레는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책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7년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어린이를 위한 미술 교육책을 출간했고, 놀이를 통해 체험할 수 있는 미술책 시리즈 <색색깔깔>과 <책놀이 Un livre> 등을 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출간하여 어린이 그림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에르베 튈레 작품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선(Line), 동그라미(Dot), 낙서(Scribble), 그리고 얼룩(Stain) 등을 시각적으로 새롭게 창작한 작품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시선을 압도하는 커다란 원화작품들이 전시장 중심부에 전시되어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관람객 각자의 감성과 감각을 활용하여 체험할 수 있는 복합 예술작품, 그림책 등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튈레의 <플라워 필드 A Field of Flowers>였다. 플라워 필드는 튈레가 물감 얼룩이 묻은 의상을 입고, 메가폰을 들고서 진행하였던 워크숍의 이름이자 작품명이기도 하다.

튈레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천 명까지의 사람들을 모아 워크숍을 열고 모두가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자리를 가졌다. 무대 위에서 함께 물감을 몸에 묻히고 자유롭게 몸짓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일종의 공연과도 같다. 이렇게 각자의 행위가 의미를 얻게 되고 형태가 되어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게끔 진행하는 것이 이 워크숍의 목적이었다고 한다.


튈레는 이렇게 만들어낸 형태, 즉 사람들이 종이 위에 그리는 꽃들에 주목했다. 이를 자신의 책과 작품에도 등장시키면서 서로가 모두 함께 그린 꽃으로 전체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떠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무심코 만들어낸 다채로운 꽃무늬들은 공간 전체 사방의 벽을 채우고 있는데, 이것들이 모여 뿜어내는 과감하면서도 거친 분위기는 튈레가 의도했던 즉흥성과 자유로움을 다분히 대변한다. 틀에 박히지 않은 초현실주의 미술과도 같은 작품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전시의 마지막 동선에서 에르베 튈레가 말했던 어록이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관람객과 대중, 독자를 하나로 만드는 예술을 사랑합니다.” 


예술은 때로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며, 해당 예술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기초 상식이 없다면 쉽게 다가가기 힘들기도 하다. 이와 같은 제약은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을 관람객, 대중, 독자와 같은 일종의 프레임에 가두게 만든다. 


대중(public)은 단조로운 삶을 좇기에 예술의 무지한 자들로 치부되기도 하며, 관람객(visitor)은 그저 수용적인 존재로 여겨질 때도 있고, 독자(reader) 정도 되어야 예술을 분석하고 예술가의 함의를 읽어낼 수 있다고 착각할 때도 있다. 애초에 예술은 이러한 구분 없이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며, 모두에게 열려있는데도 말이다.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준과 권한을 멋대로 만드는 일은 이와 같은 차별적 태도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다.

  

에르베 튈레가 추구한 예술의 방향이란 참으로 순수하고, 거침없다. 그는 서로를 갈라 구분하는 장벽 없이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예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어린이고, 어른이고, 중요하지 않다. 그의 작품이나 워크숍은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각자의 몸짓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여 표출할 수 있게끔 독려한다. 

 

이러한 그의 신조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 바로 2018년 작, <이상적인 전시 The Ideal Exhibition>다. 이는 관객이 작가 없이도 안내 영상을 보고 만들 수 있는 전시인데, 튈레의 예술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세계적인 규모의 협업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튈레는 이를 통해 신발 상자, 침실, 교실, 도서관, 아트센터, 심지어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공간에서 전시회를 만들어냈다. 이 프로젝트에서 튈레는 예술가로서 관객이 문화 생산자가 되도록 북돋우고,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신의 비전을 다시금 확인했다고 한다.



실제로 해당 작품을 본 뒤에 들었던 감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전시'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특정 장소나 시간, 참여자에 구분을 두지 않고, 평범한 일상에서도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전시 말이다. 심지어는 관객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할 수 있게끔 인도한다는 점에서 에르베 튈레는 하나의 작품을 교육으로 기능케 하는, 훌륭한 교육자의 면모 또한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예술은 창작자의 과시욕에서 비롯된 자아 뽐내기에만 그칠 수도 있다. 그것이 마냥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반대로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쉽게 만들어진 예술의 가치를 너무나도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열려있다'라는 말의 뜻은 '하찮고 가볍다'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에르베 튈레展, 색색깔깔 뮤지엄>은 그야말로 모두에게 열려있는 전시다. 전시의 특성상 얼핏 보면 다소 유치하고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 하나하나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와 작가의 의도를 곱씹다 보면, 진정한 자유 안에서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을 지속 가능한 형태로 즐기는 방법이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에르베 튈레가 전하는 자유로움에 나 또한 한껏 동화되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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